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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잇아웃 정PD Nov 20. 2016

Ed Catmull <창의성을 지휘하라>

나와 주변의 창의성을 살리는 방법들

미녀와 야수, 라이언킹, 알라딘... 80년대 말~90년대 초, 내 어린 시절의 흔들었던, 감동적인 애니메이션들이다. 중고등학생 때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되면서 미국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들은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가끔 조카들 덕분에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다.) 디즈니의 황금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것은, 한편으로 큰 행운이다. 


<디즈니의 멋진 애니메이션들 :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슈렉과 쿵푸 팬더를 앞세운 'Dreamworks'와 토이스토리로 CG 애니메이션이라는 신세계를 연 'Pixar'가 더 먼저 떠오른다. 만드는 영화마다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올해 '인사이드 아웃'으로 아카데미상을 타면서 총 8회나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Pixar'의 경우 만들어진 영화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공간, 즉 'Pixar'라는 회사 자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 번 접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들 속의 'Pixar'는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상향?이라는 느낌이었다. 'Pixar' 정말 그런 곳일까? 그곳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조직과 문화를 만들어 나갔을까? 그런 궁금증으로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인 Ed Catmull의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읽게 됐다. 


<Pixar Animation Studios 입구. 저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The Steve Jobs Building 이라 불리는 Pixar 건물의 atrium>
<Pixar CCO(Chief Creative Officer)인 John Lasseter의 사무실>



<CREATIVITY, INC. (창의성을 지휘하라) 영문판 표지>



어떤 분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1. 영화,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는 분

: 현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이 쓴 책이다. 당연히 그들이 만든 수많은 영화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들 중 한 편이라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 컴퓨터, 그래픽에 관심 있는 분

: 저자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 평생 기여한 공로로 고든 소여 상(Gordon E. Sawyer Award)을 수상한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로, 앞부분에 나오는 그의 성장 스토리는 컴퓨터나 그래픽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시작 지점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 인물이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랄까? (해당 분야를 잘 모르므로, 과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3. 경영, 리더십, 회사 또는 조직에 관심 있는 분

: 이 책은 결국 '경영서'이다. 저자는 경영자로써 오랜 기간 자신이 이끌어온 'Pixar'라는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경영자,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 그리고 회사나 조직에 속한 누구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무궁무진하다.


4. '창의성'에 관심 있는 분

: 앞서 소개한 '학교혁명'이 '학교에서의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책은 '회사, 조직에서의 창의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한 사람의 경험담이다.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Pixar의 수장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분명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 Caution ※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 3~4월경이다. 그 뒤로 조금씩 더 추가하긴 했지만, 내용 정리가 되지 않아 쓰고 멈추고를 반복하다, 결국 한동안 포기했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졌다는 핑계는 그냥 핑계일 뿐... ) 그리고 거의 반년만에 다시 시작해서, 어떻게든 끝을 냈다... 


예전에 어려워 멈췄을 때도, 이번에 다시 시작해서 글을 쓸 때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용을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 책은 여느 경제/경영 또는 인문서들처럼 내용을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작가가 따로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저자인 Ed catmull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서술을 더해 쓰인 책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순서를 정하고, 그 안에 내용을 넣어 책을 완성하는 형태가 아니다. 시간 순으로 내용이 진행되며, 각 에피소드에서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들이 녹아있다.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막상 내용을 글로 정리해보려고 하니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썼다. 이 글을 읽으면서, 또 책을 보면서 이런 점을 고려하고 보면 좋겠다. 




Ed catmull


'Pixar'의 수장이 어떤 사람일지 굳이 궁금해한 적은 없었지만, 책을 펼쳐 저자 소개를 읽기 전까지 이런 사람일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내 학창 시절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기에... (라퓨타는 아직도 인생영화.ㅠㅠ) 우리나라, 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Japanimation의 거장, Miyazaki Hayao>
<아직도 여전히 최고의 영화, Laputa-Castle in the Sky>


그런 인상이 있었기에, 다른 영화감독들 같은 창작자이거나, 정 아니면 그냥 전문경영인이지 않을까? 그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이런 의문이 들긴 했던 것 같다. 왜 일본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누구인지가 명확히 알려지고, 부각되고, 또 중요하기도 한데, 미국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을까? 많은 영화를 봤음에도, 감독이 없진 않았겠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Pixar, Dreamworks 등 제작사만 알려질 뿐. 왜 그럴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Ed Catmull>


이 책의 저자인 Ed Catmull은 컴퓨터 공학자다. 대신,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는 컴퓨터 공학자다. 그래서 'Pixar'에서 그의 역할은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이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와 아인슈타인을 좋아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년은, 자신이 그만큼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과학자가 되기로 한다.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Netscape와 Adobe, GUI를 만든 사람들과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기술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방법, 즉 컴퓨터 그래픽을 연구했다. 당시 자신이 만든 <Hand>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Randering, Polygon, Texture mapping, Smooth shading 등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단어들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제 겨우 손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장편 애니메이션을 꿈꾸다니...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사람들만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 후 30년 뒤에 그는 <Toy Story>를 통해 실제로 꿈을 이루었으므로. 


<40 Year Old 3D Computer Graphics by Ed Catmull (1972)>

영상 링크 : https://vimeo.com/16292363


한 가지 더. 대학원에서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한 경험, 즉 재능 있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지원하면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는 사실은, 이후 그가 회사를 경영하는 원칙의 밑바탕이 된다. 



'Pixar'의 탄생과 경영자로써의 목표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29살에 뉴욕 공과대학 컴퓨터 그래픽 연구소 소장이 되고, 몇 년 뒤엔 루카스 필름 그래픽스 그룹의 총책임자가 된다. 이 한 문장 안에서도 상당히 큰 괴리가 느껴진다. 29살에 연구소 소장? 거대한 사업체의 총책임자? 새롭게 발전해나가는 분야여서 가능했던 것인지, 미국이어서 가능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위, 우리나라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그 조직에서 'Pixar'라는 이름이 만들어지지만, 조지 루카스가 자금 압박에 시달려 그래픽스 그룹을 팔 상황에 닥친다. 그때 'Pixar'를 인수하게 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당시 자신의 심정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당시 한창 TV에 나오던 Maxell의 카세트테이프 광고가 떠올랐다. 이 광고에서 스피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은 남자의 긴 머리카락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압에 휩쓸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남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잡스는 스피커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압도당했다. -72p


잠깐 이 책에서의 잡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한 사람의 이야기라 굉장히 재미있다. 이 책에 그려진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생각하던 모습과 같으면서도 조금 다르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독불장군 같은 성격이 같다면, 그런 모습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이 가지는 존중과 안타까움 등은 다른 책이나 이야기에서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은 결국 잡스로 끝나는데 (후기 - 우리가 알던 스티브 잡스),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준 사람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며, 집에 있는 큰 벽돌을 다시 도전해봐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며 다시 검색해보니, 조그만 판형(이라고 하는. 실물은 아직 보지 못해서.)의 개정판이 작년에 나왔나 보다. 책이 작아지면 조금 더 쉽게 읽히려나...)


<스티브 잡스 - 윌터 아이작슨 저>



이후 앨비 레이 스미스, 존 래스터와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고, 디즈니와 손 잡게 되며, 결국 그들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역사상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게 된다. 모두 알다시피 이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고, 이후 Pixar는 그들의 황금시대를 열어나갈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나간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확히는 '토이스토리'의 성공 직후), 저자는 직원들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관리부서의 micro-managing에 의해 관리부서와 기술부서간 거리가 벌어진 것이 근본 원인이었고, 그는 이 문제점을 자유로운 소통 문화를 통해 해결해나갔다. 


'토이스토리 2'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도 있다. '토이스토리 2'는 첫 제작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감독이 중간에 교체되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들을 통해 '업무에 적합한 인재들이 상성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라고 느꼈으며, '아이디어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디어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수십 명이 관여하는 수만 가지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사람 (재능, 가치 근무습관 등)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모든 창조적 사업의 핵심 성공 비결'이므로, '좋은 인재를 육성하고 지원하면 그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토이스토리 2'를 시작할 때, Pixar에는 2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스토리는 왕이다(Story is King)', 두 번째는 '프로세스를 신뢰하라(Trust the Process)'이다. 이 두 원칙 모두, 예상되듯이, '토이스토리 2'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일으켰다. '스토리가 왕'이란 말은 제작진에게 프로젝트가 잘 될 것이란 안도감만 주었으며,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말은 프로세스만 따른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마음에 수동적으로 일을 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가방과 손잡이에 비유한다. 원칙을 설명하는 문구(손잡이)는 기억에 남을 수 있게 간결하고 함축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의미들 (경험, 통찰력, 진실)을 모두 전달하지 못하며, 가끔은 가방이 떨어져 나간지도 모른 채 손잡이만 잡고 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구성원이 문구가 아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경영자로써 자신의 역할을 '지속 가능한 창의적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품질이 최고의 사업 계획"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여기에서의 품질은 어떤 결과물이 아닌 전제 조건이자 정신 자세를 의미한다고 한다. 



브레인 트러스트 - '정직함(honesty)'이 아닌 '솔직함(candor)'

정직함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것의 중요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학창 시절 커닝하는 것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대학시절 숙제나 리포트를 제출할 때, 친구들 것을 참조하거나 베끼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염치'와 '예의'가 중요한 가치인 동양 문화권에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하는 것은 '정직'하고 '솔직'함의 표현이 아닌, '예의 없음'과 '버릇없음'을 표현하는 지표가 되곤 한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살고 있을까?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정직이라는 가치의 비중이 미국의 경우 훨씬 크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미국에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다. '정직함'을 '솔직함'으로 바꾸고, 그런 행동을 장려하는 제도를 만든 것을 보면 말이다. 


<Brain trust in Pixar>


'브레인 트러스트'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솔직함을 장려하는 제도이다. 보통 이야기하는 '브레인스토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큰 틀에서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구성원은 스토리텔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사람들, 보통 작품 제작에 참여해본 사람들로 구성된다. 두 번째,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지시할 수는 없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Pixar 식 동료 평가이자, 솔직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공해 작품의 질을 높이는 포럼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지적할 때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브레인 트러스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143~148p에 걸쳐 <Inside Out>을 처음 만들어진 순간의 브레인 트러스트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작년 개봉하여 우리나라에서 500만 명, 전 세계적으로 8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올 초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아직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개봉 예정 작품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브레인 트러스트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그렇게 재미있게 본,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이 영화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 되었을 것이며, 주제나 감동도 달랐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회의 장면은 그 자체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책 전체를 읽기 어려운 분은, 이 장면 만이라도 읽어보길 바란다. 


<Inside Out>


이 장면은 내가 회사에서 경험하는 회의와 큰 차이를 보였다. 보통 우리가 회사에서 경험하는 회의에서는 대부분 서열에 따라 자리 위치가 결정되고, 발언순서도 나뉜다. 간사 또는 발표자가 내용을 이야기하면 거기에 대해 가장 윗사람이 한두 마디를 하고, 그 바로 밑 직급의 사람들이 그 내용을 거들거나, 설명하는 발언들을 한다. 발표자와 윗사람들 이외에 대부분 발언권은 없는 경우가 많고, 가끔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발언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는 꼭 윗사람이 포함된 회의가 아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직급들이 모여 브레인 스토밍 형태의 회의를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내 발언이 정말 맞는 말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가 쉽지 않고, 정말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내용이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 등을 생각해 발언 수위를 낮추거나,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한다. 결국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깔끔한 회의가 계속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은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거나 건드려지지 않는다. 


브레인 트러스트는 어떨까?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한 피트 닥터(<UP>과 <Inside Out>의 감독이다.)가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을 때, 사람들은 우선 모두 열광했고, 그 안에서 고쳐나갔으면 하는 점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온 그에 대한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피드백을 들은 감독과 연출팀은 회의에서 논의된 피드백에서 어느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느 부분은 그대로 유지할지 논의를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특징짓는 단어들에는 '솔직한 대화, 활발한 토론, 웃음, 애착'등이 있다. 논쟁 과정에서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상호 보완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것이 이러한 회의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며, 그러기 위해선 구성원들 모두 '진실을 이야기할 것'을 다짐한다.


"건설적 비평은 비평하는 동시에 건설합니다. 부수는 동시에 짓고, 해체하는 동시에 조립하죠. 건설적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입니다." - Andrew Stanton, 154p


우리는 모두 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처벌받을 것이란 공포 없이 솔직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비평하고 건설적인 비평 언어를 배우기까지는 일정 수준의 신뢰를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경험 많은 전문가로 구성된 브레인 트러스트일지라도 브레인 트러스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자세로 비평을 듣는 사람들 혹은 피드백을 소화해 업무를 재설정하고 재시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도울 수 없다. 셋째,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조직이므로, 직원들 사이, 부서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것에 따라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보호하고,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원들의 회의실보다 복도에서 더 솔직하게 소통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경영자는 없다. - 156p


오늘도 회의가 끝나면 복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의 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실패와 공포에 대처하는 법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는 원인을 찾고, 누군가는 대책을 논의할 것이다. 급하게 대비책을 마련하고 기초적인 원인 검증이 끝나면,  누가 실수를 한 건지 책임을 묻는 과정이 이어진다. 만약 누구의 원인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관련된 사람들 모두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밝혀내기 위해 증거들을 수집할 것이고,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누군가 책임자로 지목되면 그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다른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에 힘들어하게 될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지만,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대부분 문제 발생 時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모습을 저자는 '공포에 기반을 둔, 실패 혐오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황금 양털상'을 든다. 쓸모없는 연구에 정부지원금을 낭비한 단체를 지목해 예산 낭비를 막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모든 연구기관이 예산을 낭비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기에 이 상은 실패를 위험하고 당혹스러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만들었고, 결국 연구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저자도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가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특히,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활동에서 전혀 실패하지 않는다는 목표는 백해무익' 하다고 단언한다. 이 목표 자체가 생산성을 저해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패를 장려하며, 실패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한 결과가 실패로 끝났을 때, 저자는 그 안에서 얻은 교훈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실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실험하지 않고 과거 방식에 안주하는 것을 훨씬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 회피에 집착하는 기업은 더 이상 혁신하지 못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기업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진정 창의적인 기업이 되려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 172p


회사에서 큰 슬럼프가 왔었을 때 나를 일으켜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매번 후배들을 만나면 이야기하는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후배들은 싫어하겠지... )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라.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 (상사, 동료, 후배), 회사의 시스템 등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내 주변 환경에 대한 '나의 반응(대응, 대처)'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 아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그것뿐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우리 회사는 대체 왜 이모양인지 화내고, 험담하는 것보다는,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합리화라는 비판, 또 시스템은 놔둔 채 개인의 노력만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나의 반응을 결정하라는 의미이다. 그 대처 방안이 무시일 수도 있고,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해 저자도 유사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실패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사건 자체와 이것에 수반되는 실망, 혼란, 수치이며, 두 번째는 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실패는 성장의 기회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더 발전해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픽사는 계속된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후배들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멘토링' 제도를 정착시켰다. 

조직의 리더로서 경영자는 자신을 교사라 생각해야 하며, 남을 가르치는 일을 '전체의 성공에 기여하는 귀중한 활동'이라고 인식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직장에서 하는 활동을 교육 기회로, 직장에서 경험하는 바를 학습 기회로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 179p



직원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바탕은 회사와 임직원들과의 '신뢰'가 바탕이 된다. 


공포의 가장 좋은 해독제는 신뢰다... 최고경영자의 신뢰가 뒷받침되면 실수를 저질렀을 때 공포에 얼어붙지 않고 신속하게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 신뢰는 빨리 형성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진정성을 보여줘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 181p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직원들이 실수를 저지르도록 허용하고, 스스로 실수를 해결하게 허용하라. 직원들이 공포를 느끼면 공포의 원인을 찾아내 해소하라. 이것이 경영자의 임무다. 경영자의 임무는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회복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 186p


이번엔 한 번에 끝내고 싶었지만, 너무 오래된 데다 글도 길어져서, 2개로 나눠서 올려야겠다. 이 책의 주옥같은 구절들을 잘 정리한 아래 자료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The Pixar Way 

- 37 quatos on developing and maintaing a creative company


http://www.slideshare.net/Bplans/the-pixar-way-37-qu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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