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사랑이라고?
둘째는 사랑인 이유를 찾았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지 1년이 되어간다. (다음 달이면 돌. 돌이라니!)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백이면 백. "둘째는 사랑이야~"라고 말한다.
"둘째는 그냥 예뻐요."
"둘째는 저절로 커요."
정말 그랬다. 둘째는 울어도 귀엽고, 짜증내면 더 귀엽다.
이앓이를 하느라, 아니면 원더윅스라(아이가 심리적으로 급성장하는 시기, 평소와 다르게 몹시 보채고, 울고, 짜증을 냄.) 30분~1시간씩 울어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오구오구, 짜증 났어?~"
"오구오구, 그랬어?~"
왜 그런 걸까?
나는 그 답을 첫째로부터 찾았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이의 자람이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두렵고, 불안했다.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실제로 한 달이 안 된 아이를 안을 때는 종종 '내가 아이를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상상했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이가 잘못될까 봐 무서운 꿈을 꾸기도 했다. 아이를 통해 경험하는 행복이 컸던 만큼 불안도 컸다.
불안의 원인은 '불확실성'이었다.
감각이 예민한 첫째는 밤이나 낮이나 혼자 누워 자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힘들게 낮잠을 재우고 내가 욕실에 들어가 샤워라도 할라치면 벌레한테 물린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을 채 씻어내지 못하고 급히 나와 아이를 안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웃었고, 대소변을 보느라 잠시 욕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세상을 잃은 듯 목놓아 울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엄마들이 자주 하는 얘기로 "똥도 못 누게 한다."는 말이 이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이가 좀 커서 이유식 할 때는 또 어떤가. 무항생제 한우를 삶고, 친환경 야채를 아이 전용 도마에 아이 전용 칼로 다져 아이 전용 냄비에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하며 이유식을 만든다. 품이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안 먹거거나, 먹다 뱉어내거나, 입이 아닌 손으로 조물조물거리다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근데 둘째는? 이유식 할 시기가 되어 쌀가루만 사놓은 내게 남편이 "숟가락은 사주자."며ㅋㅋ 이렇게 애둘맘이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엄마는 배운다.
'아이가 이렇게 울어도 잘못되지 않는구나.'
'이 시기쯤 아이가 심하게 우는 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야.'
'이유식 정체긴가 보네. 한 끼 부실해도 괜찮아. 내일 더 잘 먹겠지.'라고..
그렇게 불확실했던 아이에 대해 이해하고, 불확실한 자극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자, 그 과정을 다 겪은 다음 둘째를 만났다.
Q.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면?
A. "좀 울어도 괜찮아."
Q. 아이가 오열하면?
A. 울음에 압도되지 않고,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Q. 아이가 이유식을 먹지 않으면?
A. '먹었다 치고~', '배고프면 다음 끼니에 더 잘 먹겠지.' 마음이 든다.
결국 경험이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게 해 준다.
경험을 통해 이해도가 높아졌고, 불확실에 대한 불안이 줄었고, 너그러움이 생겼다.
(적고 보니, 불안했던 엄마와 함께 성장해 준 첫째에게 고마운 마음이..)
하지만 아이 둘을 양육하는 것은 또 처음이라, 나는 또 애 둘 맘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겠지.
그래도 이젠 안다.
"두려운가? 불안한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면,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