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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an 16. 2024

#1. 일하는 여성에서 경력단절여성이 되다.

11년차 심리상담사의 커리어 Re:design이야기

임신 중, 스타트업을 시작한 친구를 도와 예술교육기획 업무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하는 일에 흥미와 적성이 있는 나는 너무 즐겁게 일을 했고, 곧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게 아쉽기만 했다. 힘들게 임신을 했던 기억을 잊고, '아이를 1년만 늦게 가졌더라면..'이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출산 후, 아이가 4-5개월 됐을 무렵부터 강의를 했다. 혼자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형(I)이지만, 강의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신나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나였다. 근데 문제는 강의가 끝나고 나서였다. 난생처음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몇 시간을 보낸 아이는 서운함과 화를 쏟아내기라도 하듯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빽빽 고함을 지르며 울었고, 울다 지쳐 훌쩍이며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애가 이렇게 어린데, 꼭 일을 해야겠니. 이게 그렇게 중요해?'라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 아이가 두 돌 즈음 됐으려나.

"강사님, ㅇㅇ님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강의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기 울진입니다."

울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차로 3시간.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3시간을 달려 3시간을 강의하고 3시간을 다시 달려 집으로 돌아오면 총 9시간. 반나절이 걸리는 스케줄. 말이 반나절이지 자는 시간을 빼면 고스란히 하루를 쏟아야 한다. 출산 전이었다면 응했을 것 같다. 나와 같은 상담복지계열의 전문가들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내가 관심 있는/가장 자신 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어려서 강의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두고 강의를 하려면,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새벽부터 엄마를 불러 아이를 맡기려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이는 일하는 엄마와 떨어질 때마다 눈물콧물을 쏟았던 전적이 있지 않나. 그리고 환갑을 훌쩍 넘은 엄마의 컨디션도 생각해야 했다. 그 이유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육아를 하다 보면, 꼭 급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아이는 '이 때다!'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열이 나거나, 아프거나 하는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 혹시 모를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너무 리스크가 큰 일정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산 후 대부분의 강의의뢰를 고사해야 했다. 프리랜서라는 형태가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상대방으로부터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다시는 강의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경력이 단절될까 봐-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뉴스에서 보던 '경력단절여성이 경험하는 우울과 불안'은 모르는 여성의 얘기가 아니었다. 바로 내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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