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용한 시간들이 쌓여 단단한 삶이 된다.
육아하는 엄마의 일상
첫째 등교시키고, 둘째와 집에 돌아와 아이 아침 먹이고, 커피 한 잔 내린다. 물론 제대로 앉아서 마실 순 없다. 물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다, 거실 책장에 책을 다 쏟아내어 물고 뜯거나, 밟고 찢거나, 던지기를 할라치면 다가가 노래를 불러주거나 두꺼운 보드북을 읽어주거나, 베란다로 나가 사람들 구경을 한다. 한참 놀아준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고작 10분-15분이 지나있음에 크게 놀라고, 또 같이 장난감을 꺼내와 놀다가 소파에서 이리저리 뒹굴다가 눈을 비비거나 손가락을 빨면 침실로 들어가 눕는다. 또 한참을 침대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노래를 부르고, 아이는 내 배에 올라타서 엉덩이춤을 추거나, 내 눈코입을 만지(찔러대)고,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까꿍놀이를 한참을 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열거한 시간들 사이사이 빨래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빨래도 널고, 빨래도 삶고, 빨래도 개고, 빨래도 정리한다. 또 그 사이 방이며, 거실이며, 욕실이며, 주방을 청소하고, 설거지도 하고, 저녁에 먹을 메뉴 준비도 하고, 필요한 장을 폰으로 보기도 한다. 아, 씻기도 하네.
이건 첫째가 등교한 시간 동안의 일상이다.
첫째가 돌아오면 첫째와 대화, 첫째와 놀이, 첫째의 간식 챙기기, 첫째의 알림장 체크, 그리고 가장 힘든 첫째와 둘째의 신경전 중재가 추가되지. 첫째 둘째와 함께 오후 외출이라도 한다면, 돌아와 둘을 씻기고, 말리고, 입히고, 저녁 준비를 해서 먹이고, 치우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닦고, 씻기고, 재울 준비. 졸려서 잠투정하며 소리 지르고, 울고, 던지고, 넘어지는 둘째를 먼저 침실에 데려가 오전의 침실 루틴을 가진다. 30분이 될지, 1시간이 될지 모를 시간을 보낸다. 겨우겨우 잘 듯할 때 첫째가 버럭! 방문을 열고 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지. (이때 화를 많이 내지..) 둘째가 잠들면, 늦은 저녁을 먹고, (저녁은 아이들 먹을 때 함께 먹기도 하고-거의 전쟁통ㅋ) 첫째 책 읽어주고, 재우기. 같이 쓰러져 잠들 때도 있고, 가까스로 깨어나 책을 읽거나, 야식을 먹거나, tv를 볼 때도 있다. 그리고 일을 하게 되면 새벽까지 공부를 하거나 강의 준비도 한다. 대개 오전 7시에 일어나면, 밤 10시 정도가 되어야 하루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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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렇게 살아요."라고 알려주려 적어본 게 아니라, 문득 육아가 이런 무용한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기록해 본다는 게 이렇게 길어졌네.
오전 낮잠을 세 시간 가까이 자고 나서 눈이 통통 붓고,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둘째 얼굴이 너무 귀여워 뽀뽀를 해주고는, 점심 때라 식탁의자에 앉혀 밥을 챙겨 주었더니, 혼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떠먹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고, (봐도 봐도 신기한 인간의 발달) 이뻐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첫째가 오기 전까지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다. 그러다 소파에 누운 내게 (절대 혼자 안 두는 내 아들.. 자식..ㅎ) 올라와 내 가슴팍에 납작 엎드려 손가락을 쪽쪽 빠는데, 갑자기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한 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내게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이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구나.' 싶었다.
적어보니, 엄마의 역할을 하는 나에게는 실로 하루가 무용한 시간들 뿐인 것 같은데, (집안일 적성에 안 맞는 나..ㅠㅜ) 이 시간들 틈에 아이와 나누는 눈빛, 주고받는 말, 나누는 스킨십, 우리를 감싸는 집안의 온기가 아이에게는 삶을 살아갈 든든한 양분이 된다는 것.
그래서 다짐했다.
무용하지만 의미 있는 이 시간을 잘 살아보자고. (그리고 기록도 해 보자고.)
그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job이고, 역할이고, 미션이고, 삶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