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몇 달 전 나는 한 분이 돌아가시는 과정과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경험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한때 자살을 생각해 보았음에도, 정작 '죽음'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구체적'으로 와닿는 죽음은 '추상적'으로 대하던 죽음보다 복잡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불필요한 과정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 의사다. 의사로서 현대 의학이 죽음을 그동안 '일종의 의학적 경험'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던 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적인 해명이나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게 아닌 의사로서 본인이 경험한 사례들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때문에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더욱이 꽤 유려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는 비단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자연스러운 번역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어 번역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물론 의역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사가 붙인 제목과 달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기보단 저자가 서문에 밝힌 대로,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정직하게 살펴보고 죽음의 불가피성을 조망"하는 입장에 가깝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인간답게' 죽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에 가깝다. 원제인 <Being Mortal>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러니 만약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다면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은 8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1.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는 성장을 끝마치면 노화 즉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체에 기능적인 문제가 생기고 점점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로 인해 "2.무너지고 3.의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의 필요한 "4.도움"은 무엇이며 "5.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더 이상 고쳐질 수 있는 병이 아닌데도(혹은 고쳐진다고 해도 다른 신체에 문제가 생겨 또다른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또다른 부작용을 경험한다고 해도) 계속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수술을 받으며 더 오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좋은지, 죽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종말임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곳에 관심을 두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저자는 후자의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6.내려놓고" 죽음에 관한 "7.어려운 대화"를 통해 끝을 받아들이는 "8.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숫자를 붙인 이유는 각 장의 챕터 제목이기 때문이다.)
꼭 저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고사로 갑자기 죽게 되는 게 아니라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다.
덧붙임-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잘 죽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지난 7일 서울시설공단에서 주최한 '생사 문화의 날'이란 행사가 열렸다. 장례에 관한 행사였는데 장례 문화에도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에 관해 논의되었다. (http://omn.kr/faui)
또한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 의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 7월부터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들이 의료보험의 혜택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호스피스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에게 '치료'를 하지 않는 대신 '통증이나 증상 완화'만을 제공하는 의료를 말한다. 말기암 환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극심한 통증을 벗어나게 해 주고 삶을 연장시키기보단 현재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곧 닥쳐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고 죽기 전까지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 주는데 목적을 둔다. 실제로 호스피스 의료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