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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Oct 21. 2023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아름다운 K 콘텐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정도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


 20여 년 전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김구 선생의 소원이 터무니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의 '문화'라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한글, 온돌, 궁궐, 김치 뭐 그런 것들인가?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이 분명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질 만한지, 그것들을 보러 외국인들이 한국에 올 것인지 생각하면 나조차도 '글쎄'였다.


 10대 때부터 나는 K POP(당시의 워딩으로는 아이돌 음악)과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나는 늘 이 뛰어난 가수들과 멋진 노래, 화려한 무대를 한국 사람들만 알고 있기엔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 작은 나라에 잘생기고 예쁘고 재능 넘치는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들이 얼마나 칼군무를 멋있게 추고 열정을 다해 노래하는지, 그렇게 멋있고 잘생긴 사람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얼마나 웃기는지,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얼마나 온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하는지 그 매력을 사람들이 안다면 분명 한국 가수들과 음악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반드시 악(惡)이 응징당하고 선(善)이 승리한다. 주인공이 선을 추구하기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겪을지라도 마침내는 악을 물리치고야 만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홍길동전 같은 고전소설을 읽어 온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스토리 전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또한 한국 드라마는 항상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치하다 하지만 사랑만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는 없다. 인도에서는 최근에 '사랑의 불시착'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났던 '사랑의 불시착'의 열혈 시청자였던 인도 사람들은 실제로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한 나라였다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지게 된 비슷한 역사를 공유해서일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나의 대답에 인도 사람들은 여기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들이 그렇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았다는 게 놀라웠고,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제가 사랑이어서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 너무 열광하며 보았던 <사랑의 불시착>. 인도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K 드라마.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도에서 벗어난 스토리지만 결말의 주인공의 행보는 부조리를 파헤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김구 선생은 이런 점을 그 옛날에 꿰뚫어 보신 것일까. K 콘텐츠에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있다. 나는 그래서 K 콘텐츠를 좋아한다.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한국 노래와 드라마의 인기를 더욱 생생하게 체감하게 된다. 문구점에 가면 BTS와 블랙핑크의 굿즈를 파는 걸  볼 수 있고 키즈 카페에 가면 K POP이 흘러나온다.내가 자주 가는 쇼핑몰의 캘빈 클라인 매장 윈도우에는 제니와 정국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이웃 주민이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 반가워하며 요즘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고 델리에서 열린 K POP 콘테스트 결승전을 관람했다. 인도 전역에서 토너먼트를 거쳐 뽑힌 어린 인도 친구들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 아이돌의 춤을 추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낯설면서도 뭔지 모를 뭉클함과 자랑스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초대 가수로 온 MCND(사실 처음 들어봤다)의 무대는 정말 멋있었다. K POP 특유의 절도 있는 춤동작과 칼군무, 노래 하나를 부르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 노래하고 춤춘 후 몰아쉬는 가쁜 숨소리와 멀리서도 보이는 땀방울, 결승전이 열리는 아레나 가득히 울려 퍼지는 한국어 노래,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인도 아이들... 그건 정말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이곳은 대체 한국인가 인도인가, 꿈속에 있는 기분이어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언젠가는 이 멋짐을 다들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함께 공연을 보며 르세라핌 노래를 따라 불렀던 우리 아이는 이게 얼마나 가슴 벅차고 신기한 일인지 알까? 김구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시대에 태어난 너는 이게 너무 당연한 일일 테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꿈과 희망을 준 K 콘텐츠를 보며 나는 오늘도 이 먼 인도 땅에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제는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하면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생겼다.

보면서 너무 아름답고 벅차 눈물 찔끔 흘렸던 BTS의 경복궁 경회루 'Mikrokosmos' 무대. (이미지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보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고 공연 기획자의 엄청난 안목을 칭찬했던 BTS의 경복궁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근정전 무대도 정말 좋지만 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경회루에서 부른 노래가 하필 '소우주'라니! BTS가 그들의 우주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먼 땅에서 경복궁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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