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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Jan 23. 2024

즐겁게 여행할 권리

시각, 청각, 미각이 힘든 인도 국내 여행 

 어디나 널려 있는 쓰레기, 길거리를 활보하는 소떼(feat 자동차 창문 두드리는 거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는 인도 길거리에 빠지면 섭섭한 3종 세트이다. 아파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경험할 수 있는 이 피로감에 질려 집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동안 전혀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제법 무심하게 지나칠 만큼 시간이 지나니 "인도의 다른 지역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었다. 아그라는 지난 번에 가봤으니 이번에는 차로 네 시간 거리인 자이푸르 차례였다. 오랜만의 여행에 설레어 새벽부터 차에서 먹을 김밥과 과일을 싸서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땐 알지 못했다. 그 김밥이 내가 2박 3일 자이푸르 여행에서 먹은 유일한 제대로 된 한 끼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 여행이 집의 소중함을 깨닫는 여행이 되리라는 것을. 

인도판 만리장성인 암베르 포트(Amber Fort).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암베르 궁전 중 겨울 궁전의 천장. 실제로 보면 정말 정교하고 예쁘다. 

 

델리는 양반이었다, 경적으로 디제잉하는 자이푸르 


 자이푸르로 떠나기 전 이미 다녀온 지인들에게서 경적 소리와 호객 행위를 각오하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인도에 살면서 경적 소리는 웬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과연 자이푸르의 경적 소리는 차원이 달랐다. 자이푸르는 인도 사람들도 많이 놀러오는 관광 도시라 차도 사람도 정말 많고 교통 체증도 심했다. 좁은 길에 차가 가득 들어차 있는데 바로 뒷차가 "빠~~~~~앙"하고 수 초간 이어지는 경적을 울린다. 저렇게 경적을 울리면 앞 차가 빨리 가기라도 하나? 델리 시내의 경적이 "나 여기 있다. 조심해."의 뜻이라면 자이푸르의 경적은 "이 OO야 빨리 가!"에 가까웠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 가지 음의 높낮이가 없는 경적 소리만 들어봤다면, 자이푸르에서는 흡사 디제잉을 방불케 하는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게 마구 음악을 연주하니 나중에는 실소가 나왔다. 좋지 않은 상태의 도로를 네 시간 여 달려 지친 상태에서 경적 디제잉까지 들으니 더 이상 관광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왔어.' 자기 암시를 하며 꿋꿋이 구경을 나섰으나 이미 나는 지쳐 있었다. 


말도 안되는 외국인 바가지 

 

 바가지 요금을 경험해 본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 여행은 주요 관광지나 박물관에 입장료가 표시되어 있다. 대부분 외국인과 현지인이 같은 요금을 낸다. 그러나 인도는 어딜 가든 대부분 외국인과 인디안 요금이 따로 있고, 외국인 요금은 인디안보다 훨씬 비싸다. 


 자이푸르 시내의 유명한 관광지인 시티팰리스를 구경하러 갔을 때였다. 그 곳에도 역시나 인디안 요금과 외국인 요금이 따로 표기되어 있었다. 매표소 앞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어떤 인도인이 다가와 저기 표시되어 있는 요금은 정원만 들어갈 수 있는 요금이고, 궁전 안까지 보려면 얼마를 더 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그 금액은 매표소 앞엔 적혀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 물가를 생각했을 때 정말 터무니 없이 비싼, 인디안 요금의 10배가 넘는 요금이었다. 더이상 그 곳을 구경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자이푸르에서 유명한 코끼리 투어. 현지에서 섭외한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곳은 코끼리들이 한가롭게 풀을 먹고 있는 정글이 우거진 곳이었다. 어리버리하게 가이드를 따라간 것이 잘못이었다. 코끼리를 타려면 한사람 앞에 1만 6천 루피(한국돈 약 25만원)를 내란다. 말도 안되는 바가지 요금에 우리 가족은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차를 불렀다. 그런데 이미 정글에 들어왔으니 정글 입장료 300루피를 내란다. 우리 가족과 기사, 공원 직원들 사이에 한동안 고성이 오갔다. 몇개월쯤 먹은 인도 생활 짬밥으로 그래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 우리 가족은 300루피를 던지다시피 하고 정글을 빠져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안 주고 나올 것을. 우리는 지쳐서 일찌감치 호텔로 향했다. 

남편이 분노에 차서 폭풍검색으로 찾아낸 합리적인 가격대의 코끼리 투어. 직원들은 친절했고 바가지 요금도 없었다. 

공허함을 달랠 길 없는 음식, 한식 먹으러 집에 가고 싶다 


 깨끗하기로는 거의 세계 제일인 것 같은 한국인들. 그것을 인도 와서 알았다. 인도의 호텔은 웬만한 글로벌 체인을 가도 한국인들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청소 상태를 보여 준다. 그래도 글로벌 체인 호텔 정도 가야 그나마도 깨끗한 숙소에서 잘 수 있기 때문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호텔을 예약하였다. 당연히 레스토랑도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겠지 하는 나의 생각은 저녁 식사 시간에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인도 호텔에서 육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외국 호텔을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햄, 달걀, 생선 등 한국인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단백질 식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 모를 다양한 종류의 커리와 샐러드, 과일 정도... 대부분의 요리가 인디안이었다. 한편으로는 인도니까 당연하지 싶었지만, 아니 그래도 글로벌 체인 호텔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괘씸함이 느껴졌다. 사실 인도 현지의 인디안 요리는 대부분 아주 맵고, 기버터를 많이 써서 한두숟갈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진다. 샐러드와 빵으로 간단히 식사했지만 그 배고픔과 공허함은 채워질 길이 없었다. 햇반이라도 싸올걸. 여행하면 할수록 힐링이 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 아! 집에 가고 싶다! 


자이푸르의 상징,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마지막 날 아침, 자이푸르의 상징인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을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루프탑 카페를 찾아갔다. 경적 디제잉, 바가지 요금, 인디안 식단의 원투쓰리 펀치를 맞은 터라 모든 기대를 다 내려놓고 간 곳이었다. 너무 놀랍게도 멀티 퀴진을 제공하는 카페였다. 피자, 파스타, 샌드위치 등 모든 음식의 맛이 평타였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아주 훌륭한 맛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아는 그 맛의 음식을 먹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 그제서야 정면의 하와마할이 눈에 들어왔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풍경이야말로 여행지에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인도에서는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았다. 새삼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감사했고, 우리집에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집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K POP을 들으며, 이렇게 인터넷만 연결되면 한국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또 새삼 감사했다. 집으로 가는 설렘이 자이푸르로 떠날 때의 설렘보다 더 컸다. 그리고 여행의 화룡점정은 집에 와서 먹은 삼겹살과 된장찌개였다. 그제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각, 청각, 미각으로 고통 받았던 두번째 인도 국내 여행은 끝이 났다. 


 한국에 살았을 때 여행을 가면 그 여행이 너무 좋고 즐거워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싫었던 적이 많았다. 인도에서도 즐겁게 여행할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아니면 여행의 끝자락에서 또 다시 일상에 감사하게 될까. 그러나 한국에서와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인도에서는 이제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나의 매일매일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전한 아파트, 10분 거리의 한인 슈퍼, 값싸고 맛있는 과일, 그 모든 게 하나도 당연하지 않고 감사하다. 살다가 감사함을 잃어갈 때쯤, 꼭 자이푸르 여행을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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