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가 전부가 아닙니다
"인도 음식 먹으러 가자!"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종종 인도 음식을 먹으러 가곤 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치킨 마크니와 겉바속촉한 난, 불향 가득 탄두리 치킨 조합은 주기적으로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인도가 주재지로 결정되었을 때 좋아하는 인도 음식은 실컷 먹을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현지에 와서 먹어본 인도 음식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맵찔이인 나에게는 심하게 매웠고, 쿰쿰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마살라 냄새는 너무 역했다...
인도 음식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향신료를 혼합한 '마살라'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데, 계피, 후추, 생강, 고추, 큐민, 고수, 넛멕, 카다몸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만든다. 인도 슈퍼에 가면 시판 마살라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인도 사람들은 취향에 맞게 마살라를 만들어 먹어 집집마다 마살라 맛이 다르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떤 마살라 냄새는 내게 더 역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인도 음식은 상당히 순화된 맛이었던 것이다. 나는 맵찔이라 버터치킨커리조차 너무 매웠다.
매운맛에 데어 한동안 인도 음식을 먹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도는 정말 드넓은 나라.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드넓은 만큼 인도에는 지역별로 정말 다양한 음식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맵지 않은 음식도 있다! 인도 생활 2년 차 맵찔이가 찾아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순한 맛 인도 음식(디저트 포함)을 추천해 본다.
인도 커리의 종류는 정말 엄청나다. 베이스가 무엇이냐에 따라, 어떤 재료를 넣냐에 따라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지만 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인도스러운 커리를 꼽으라면 '달 마크니'일 것이다. 힌디로 달은 콩, 마크니는 버터라는 뜻인데 '달 마크니'는 렌틸콩이나 강낭콩을 넣은 베지테리언 커리이다. 커리 중에서도 베지테리언 커리는 맵지 않은 편이다.
달 마크니의 매력은 콩이 통째로 씹히는 질감과 특유의 살짝 시큼한 맛이다. 매운맛이 없기 때문에 심심하고 부드럽다. 당연히 난 또는 밥이랑 곁들여 먹으면 좋은데, 커리 맛 자체가 좀 심심한 편이다 보니 인도 남부 음식 중 하나인 '비리야니(biryani)'와 함께 먹어도 좋다. 비리야니는 볶음밥 같이 보이지만, 생쌀에 향신료에 재운 쌀이나 생선을 넣고 쪄낸 요리이다. 기름으로 볶지 않았기 때문에, 볶음밥 같아 보이는 것과 달리 꽤 담백한 맛이다. 비리야니 또한 나에게 좀 매운 편이었지만, 매운 것을 잘 먹는 한국 사람이라면 좋아할 맛이다.
달 마크니를 먹을 때의 팁 하나. 반 정도 먹었을 때 꿀을 달라고 해서 한 스푼 넣어보자. 식감이 더 부드러워지고 과하지 않은 단맛이 더해져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인도 남부 음식 중 하나인 도사는 쌀로 만든 얇은 팬케이크인데, 부침개 끝부분만을 먹는 것처럼 바삭바삭하다. 도사 요리 전문점에 가면 먹을 수 있는데(물론 길거리에서도 판다) 막 만들어져 나온 것을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양파나 코코넛 등 안의 내용물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도사가 있는데 내 입맛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이 제일 맛있다. 보통은 매운 커리 소스나 달콤한 처트니 소스에 찍어 먹는다. 부침개라고는 하지만 기름에 거의 튀겨내듯이 굽기 때문에 두 세입 먹다 보면 느끼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남인도 필터 커피를 함께 주문해서 곁들여 보자. 진한 커피의 맛이 느끼함을 달래 준다.
시금치 튀김인 팔락 파타 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 음식이다.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는데, 튀김 위에 올려 먹는 소스와의 조합이 기가 막히다. 그 소스는 다진 양파, 마살라, 잘게 부순 튀긴 당면, 인도 요리에 항상 짝꿍처럼 등장하는 그린 처트니, 요거트, 석류 등이다. 시금치의 튀김옷은 튜메릭, 레드 칠리, 펜넬 등의 향신료에 밀가루를 섞어 만들어 약간의 노란빛을 띠며, 튀김 자체에서도 향신료 향이 난다. 여기에 양파와 마살라의 매운맛, 그린 처트니의 쌉쌀한 맛, 요거트의 부드러운 맛, 석류의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맛을 낸다. 맥주와 함께라면 끝도 없이 먹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쿨피(Kulfi) : 쫀득쫀득한 인도 전통 아이스크림
이탈리아에 가면 젤라또를 꼭 먹어봐야 하듯이 인도에 간다면 쿨피를 꼭 먹어봐야 한다. 쿨피는 원래 물소젖과 설탕을 베이스로 한 인도 전통 아이스크림인데 요즘에는 대부분 우유로 만든다고 한다. 인도 식당에서 처음 쿨피를 먹어봤을 때 맛은 부드러운데 쫀쫀한 식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유에 설탕을 넣고 천천히 저어서 응축되기 시작하면 얼리는 것이라 일반 아이스크림보다도 식감이 쫀득쫀득하다고 한다. 보통은 피스타치오, 샤프란, 장미꽃잎 등을 넣어서 맛과 향을 낸다.
인도 디저트하면 보통은 굴랍자문이나 잘레비를 많이 떠올리는데 그 두 개 모두 나에게는 너무 달고 기름졌다. 너무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카주 카틀리를 시도해 보자. 캐슈넛에 연유와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전통 디저트인데 겉에는 식용 은을 발라 흡사 갈치 비늘 같은 색깔이다.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인데, 씹을수록 캐슈넛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간다면 카주 카틀리를 기념품으로 사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할디람스(Haldiram's) 등의 브랜드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공항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커피랑 먹었을 때 아주 잘 어울린다.
마살라 냄새는 가끔 역하지만 마살라 차이는 예외다. 인도를 대표하는 차인 마살라 차이는 차에 우유와 마살라를 넣고 끓인 차이다. 예전 영국 식민지 시대 때 좋은 품질의 차는 영국으로 다 보내지고 남아 있는 품질이 떨어지는 차를 맛있게 먹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카다몸, 계피, 생강, 팔각, 후추, 정향 등 각종 향신료를 넣고 끓여서 만든다. 향신료가 어우러진 매콤하고 강한 향이 먼저 코를 찌르고, 한입 마시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풍성하고 복잡한 맛이 느껴진다. 여기에 설탕을 소량 타 마시면 달달한 맛을 추가할 수 있다. 인도 사람들은 보통은 집에서 끓여 먹지만, 여행을 왔다면 chaayos 나 Chai Point 같은 차이 티 전문 프랜차이즈에 가도 마실 수 있고 슈퍼마켓에서 차이 티 믹스를 살 수도 있다. 물론 길거리에서도 보글보글 끓인 마살라 차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일회용 테라코타 잔에 담아 주니 먹고 나서는 꼭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