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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Jul 26. 2021

때로는 불가피한

감정이 있다.

  만성 우울증에서 가끔 필요시 약으로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사람이 되고 난 후로도 우울과 불안 증세가 느닷없이 기승을 부릴까봐 조마조마한 날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증상이 없을 때 차곡차곡 쌓은 힘과 요령이 불운하고 착잡한 일정을 조금 더 견딜 만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접두어를 넣는다면

20년이 조금 안되게 유년기와 청년기를 함께 해준 노묘를 보내줘야 하는 일이 닥치기도 하고, 나는 동요하지 않고 적절한 애도와 슬픔의 선을 찾기 위해(그런 선이 있다면) 약을 먹고, 체력을 어르고 당겨 장례 업체로 향하는 가족과 굳이 동행하는 무리는 피한다.


  다정히 배웅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극적인 감정 변화는 덜 하지만, 글쎄. 누군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만큼 괜찮지는 않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지난한 투병 때문에 억지로 슬픈 날과 애도의 밤을 무감하게 외면할 이유는 없다. 내일 아침에 어떤 기분일까 무서워 랜덤한 룰렛을 돌리는 기분으로 잠들 까닭은 더더욱 없다. 슬프고 처질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이런 날들을 맞이하면서도 내가 나이 먹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추하는 건 괜찮다.


  단절된 한 순간의 환희와 행복을 부여잡고 지속적 지루함과 은은한 불행을 견디는 게 인생이라면 고양이와 함께 보낸 날들은 드물게도 연속적인 안온함과 기쁨 아니었던가.


  고마워, 다시 만나. 그저 인사만 다시 몇번 반복하고, 오늘은 일찍 생각의 문을 닫아 두자. 그리고 알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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