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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Nov 16. 2023

인종이라는 발명된 관념

82매거진 아카이빙03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과 그 다양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유럽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면 항상 놀라게 된다. 하루는 아시아 마트에서 장을 보던 도중 어떤 백인 중년 여성이 ‘그 당신 나라chez vous의 바삭바삭하고 안에 고기랑 채소가 들어있는 그거(베트남 요리인 넴 nem을 말하는 듯했다.)’ 어떻게 만드느냐고 다짜고짜 물어본 일이 있었다. ‘당신이 말하는 내 나라가 어디냐’고 묻자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아시아가 유럽보다도 큰 대륙이고, 유럽보다도 다양한 국가가 있다는 것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거 안됐네요.’ 그렇게 자리를 떴다. 지금 우리가 1분이면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볼 수 있는 세계지도를 놓고 단순 거리를 계산해봤을 때, 하노이와 서울 사이의 거리는 파리에서 알제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지식을 무시한 채 자칫 상대에게 무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을 쉽게 하는 걸까?

옛날 사람들은 바다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어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럽 사람들은 인도를 찾기 위해 서쪽으로 탐험을 떠났다. 이런 시기에 비해 현대의 지리적 지식은 제법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항공 위성 사진까지 보여주는 세계 지도가, 최첨단을 사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여전히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걸까? 지구본을 돌려보면 새삼스러운 것들이 있다.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6배나 큰 대륙이라는 것, 그 거대한 대륙의 국경선이 수천킬로미터 가까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는 것. 북미의 주 구분도 마찬가지라는 것. 로마와 튀니스 사이의 거리가 서울에서 부산 사이의 거리보다 짧다는 것 등등이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트로이: 왕국의 몰락>에서는 모든 신과 인간의 신이라는 제우스와 트로이 전쟁의 주역 중 하나인 영웅 아킬레우스 모두 흑인 배우가 연기를 한다. 이 캐스팅에 대해서 한국 감상평 웹에서는 과도한 PC(Political co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함이라며 극에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이 많았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이 고증을 무시했다는 식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럽 문화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신이나 유명한 영웅이 흑인일리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말했듯이 북아프리카 연안과 남유럽 연안 사이의 거리는 몹시 가깝다. 심지어 아테네와 로마 사이의 직선 거리는 로마와 튀니스 사이의 직선 거리의 세배쯤 된다. 물론 고대 시대의 육상 경로와 해상 경로의 실제적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별을 따라 메시아의 탄생을 보러 밤낮없이 걸어간 동방박사처럼, 바다나 지금의 시리아와 터키를 거친 긴 육로를 따라온 낯선 이들이 그리스에 없었으리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런 낯선 외모에 대한 호기심이 경배로 이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너무 터무니없나?

헬레네의 반환에 감춰진 그리스 군의 진짜 목적은 동쪽으로 향하는 교역로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설이다. 실제로 트로이는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스 문명 사이의 중심에 위치했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죽였다고 알려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은 에티오피아의 왕 멤논이다. 신화에 따르면 그는 새벽의 여신과 트로이 왕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인 중에 피부색 검은 이가 없으리란 단정이 충분히 사실에 가까울까?

우리가 다른 문명이나 민족, 인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의외로 지리적 사실, 세계사를 통틀어 내린 결론이 아니라 17세기 이후 구성된 유럽 백인 중심적인 사회, 문화적 요소들로 구성된 것에 가깝다.  17세기 이후, 즉, 삼각무역 및 가장 악랄하고 계획적인 인종차별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노예무역 이전 유럽인(백인)들은 우리가 흔히 20세기 흑-백 갈등을 떠올리듯 흑인을 경시했을까? 그렇지 않다.  1483년에 포르투갈 왕은 콩고의 왕 은징가 음벰바와 동등한 협력 관계를 맺고 정식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콩고의 귀족 젊은이들이 리스본에서 유학을 했고 그 중 한 명은 포르투갈 주교가 되기도 했다. 1550년 대의 포르투갈 인구의 10%는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모두가 하인이나 피고용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유럽 사람들의 태도는 점점 더 많은 노예를 필요로 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진다.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전염병으로 사망해 땅을 경작할 수가 없다는 게 판명나자 노예 무역은 노다지 사업이 되었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개인으로 기록되지 않고 톤 단위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지극히 특정 집단이 특정 시기 동안 필요에 따라 만들어 반복해 제시한 사고방식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지도를 머리에 넣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역시도 동북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문화나 민족 구성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의 차이점은 상식이고, 베트남과 한국의 차이점은 몰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질 때는 분명히 화가 난다. 실제 지리적 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편견에 기반한 거리감, 그 관념적 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대상이다.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에 수많은 나라가 있다는 것을 무시한 채 ‘아프리카’라고 통칭하는 무지, 코리안 뷰티 코너에 기모노를 입고 경단머리를 한 여성 화보를 붙여놓는 것, 모두 관념적 거리에서 기인하는 오류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사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앎은 이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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