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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근 Dec 02. 2019

나도 책 싸게 사고 싶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기 전에 생각해볼 것들




매달 초 인터넷서점에서 할인쿠폰을 주면, 하루종일 그걸로 무슨 책을 알뜰하게 살까 고민한다. 한참 고민한 뒤, 지난달에 적립해둔 마일리지까지 싹싹 긁어 책을 사면 좀 뿌듯하기도 하다. 어느 서점에서든 이렇게 싸게 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만 좋은 일일 뿐이다.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길은 아니라서 그렇다. 도서정가제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값의 속사정


책값 1만원에도 다양한 사람의 밥벌이가 얽혀 있다. 좀 자세히 설명을 해보자면.


출판사와 서점은 책값을 보통 7:3으로 나눠 갖는다. 즉, 1만 원짜리 책이라면 출판사는 7000원, 서점은 3000원을 갖는다. 출판사는 7000원을 다시 다른 업체/사람과 나눠 갖는다. 1000원은 책을 전국 서점에 유통해주는 ‘유통사’ 또는 ‘도매상’에 가고, 1000원은 저자한테 간다. 거기서 인쇄비, 디자인비, 편집자 월급 등을 빼면 2500원 정도가 남는다(외서면 번역료도 빼야 한다). 이걸로 2쇄를 찍거나 마케팅을 한다.


서점은 3000원을 이익으로 고스란히 가질까. 그렇지 않다. 카드 수수료 내고, 월세 내고, 직원 월급으로 쓴다. 이런 돈이 나가지 않는다고 쳐도 3권은 팔아야 최저시급을 버는 셈인데, 작은 서점 기준으로 1시간에 3권 파는 게 쉽지는 않다. 인터넷서점이 제공하는 서비스(10% 할인+마일리지 사용)도 3000원에서 감당하는 거다. (그럼 도대체 배송비 무료는 어디서 나올까. 주로 광고비에서 나온다.)



정가제의 힘


이런 상황에 도서정가제를 폐지한다고 가정해보자. 1만원짜리를 30% 할인해서 7000원에 판다면, 제작, 유통, 판매에 관련된 사람들이 다 30%씩 감수할까? 아니면 출판사가 끌어안을까, 서점이 끌어안을까? 누군가 한숨을 푹 쉬고 살을 깎아먹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도서정가제 덕분에 책을 만들고 독자 곁에 가게끔 하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사니즘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점 창업에 좀 더 자신있게 뛰어들 수 있었다. 2015년 전국에 70곳 정도였던 작은 서점(독립 서점)이 2018년까지 300곳 정도로 늘었다. 그런 덕분에 사람들은 각자의 동네에서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낭독회, 독서 모임, 동네서점 에디션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점 창업기, 순례기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정가제가 오히려 서점이 폐업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정가제가 시작된 뒤로 서점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정가제가 시작된 시기와 서점이 줄어드는 추이를 단순 비교한 것일 뿐이다. 독서 인구 자체가 적은 현실과, 인터넷서점과 비교해 작은 서점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등도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가제를 폐지해서 작은 서점이 가격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책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고려하지 않고 하는 소리다.)



책의 가치


책은 상품이라는 이야기를 빙 둘러서 했다. 먹고살기 힘들고 수익 나기 힘든 상품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좀 더 가치 지향적인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다.


책에는 한 사람의 지식과 삶이 들어 있다. 한 순간과 시대가 활자로 고정되어 있다. 아무도 똑같이 쓸 수 없으며, 부러 쓰지 않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에 전할 수 없다(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을 영구 보존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세상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며 팔리지도 않을 책을 사명감으로 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오래오래 지속가능하게 책을 내면 좋겠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에 손을 대는 모두가 그러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계속 제값 주고 사려 한다. 작은 서점을 더 애용하려고 한다. 도서정가제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꾸준히 말하고자 한다. 그것이 책의 경제적 가치와 무형의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참고한 글

https://bookedit.tistory.com/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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