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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예쁜이

by 김열무호두

몇 주전에 3년동안 있었던 작업실에서 나왔다. 그 지역의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집값이 오르자 작업실 주인장이 집을 내놓았기 때문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다른 건 괜찮았는데 그간 밥을 주던 고양이 예쁜이가 영 마음에 밟혔다. 굶을까 싶어 작은 급식소를 마련해주고 사료를 부어준 것이 고작이었지만.


마음이 산란한 어느날에도 예쁜이가 사료를 아그작아그작 먹는 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졌다. 예쁜이를 돕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위로는 내가 받았다. 작업실에 가기 싫은 날에도 예쁜이 밥이 떨어졌을까봐 꾸역꾸역 갔기에 뭐라도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예쁜이는 내가 오는 기척이 들리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뛰어왔다. 츄르 가져올께 기다려 예쁜아. 그러면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찹찹 먹고 홀연히 떠났다. 고양이 입에 밥들어가는 소리가 이렇게 좋을 일이었나. 계속되는 마감에 지친 날에도 그 소리를 들으면 힘이나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두달간 예쁜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이미 노묘가 둘이나 있고 3년이나 밥을 줬지만 1미터 근처로만 들어가면 후닥닥 도망가는 녀석이라 집으로 데려가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통덫을 놓을까 어떡힐까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이사 날짜는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작업실 빌라 반장언니에게 남은 사료만이라도 예쁜이에게 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하였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언니같은 반장언니는 야무지고 눈치도 빨라서 내가 예쁜이에게 밥주는 것을 주민들로부터 적당히 커버를 해주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우리는 예쁜이 밥그릇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신소리들을 했었다.


고장난 엘레베이터는 왜 계속 고장나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반장언니가 수영선출이었다는 얘기까지 이야기는 끝이없었다. 반장언니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세냥이를 줄줄이 보내고 난 후부터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현명한 사람답게 내가 밥주는 것을 용인은 해주었지만 정들까봐 스스로 주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것을 알기에 어렵게 얘기를 꺼내자 안그래도 내가 가고 나면 자기가 줘야 하나보다 생각했다고 했다. 흔쾌히 사료셔틀을 맡아준 그녀에게 남은 사료와 츄르를 내가 구운 딱딱한 빵과 함께 주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면서 다시 오실 거죠? 하고 물었지만 나는 아마도 다시 갈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사가기 며칠전까지 나는 예쁜이에게 내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쁜이가 빌라 안의 짐 놓는 곳으로 들어와 숨어서 나가질 않았다. 츄르를 짜서 가져왔더니 그제서야 나와서 먹었다. 아무래도 바깥에 무서운 녀석이 있었던 것 같았다. 굶었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는 예쁜이에게 이사소식을 전했더니 예쁜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예쁜아. 반장언니가 밥 줄거니까 꼭 다시 와서 먹어야 해. 예쁜이는 눈을 꾹 감더니 다시 츄르를 핥아먹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빌라 밖으로 나갔다.


야무진 반장언니는 예쁜이를 잘 돌봐줄것이다. 예쁜이는 예쁜이의 삶을 살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사료셔틀이었을 뿐.


한 두 주나 지났을까, 작업실 주인장 작가님이 지나가다 작업실 빌라에 들렀다며 예쁜이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릇에 사료도 넉넉히 부어져있고, 예쁜이를 만났는데 그새 잘먹었는지 살이 찐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어떤 한 시기가 멀어져간다. 그간 고마웠다. 예쁜이. 잘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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