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야,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되어서
엄마랑 차를 타고 가다가 올림픽 경기장 부근을 지날 때였다. 왼쪽으로는 올림픽 기념 동상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편에는 관광버스 몇 대가 늘어서 있다. 이곳, 왠지 낯이 익은데?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혀 다행이라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엄마에게 이곳이 ‘그곳’이 맞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십수 년 전, 이 근처에서 엄마가 발을 구르며 화를 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굳이 그 얘기로 엄마를 다시 화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날의 상황이 부분 부분 기억나지 않았다. 왕벚꽃이었는지, 군왕제였는지 '왕' 자가 들어가는 진해 벚꽃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진해가 어딘지도, 그곳이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다. 어느 날 엄마가 벚꽃을 보러 간다고 했고, 준비를 하라기에 준비를 했을 뿐.
어쩐 이유에선지 우리는 버스가 출발하는 집결지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간발의 차로 버스를 눈 앞에서 놓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던 것도 같고. 엄마가 여행사로 추정되는 곳에 전화를 걸어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태워가라며 사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나는 지금껏 죄책감을 느껴왔는데, 그게 나와 동생이 채비를 늦게 하여 늦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가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상황에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 한 채로, 오히려 엄마가 불 같이 화를 내는 새로운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기 때문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아니면 그냥 엄마가 언짢아하는 상황에 대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지도.(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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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때는 내가 많이 어렸을 때였고, 기억을 확실히 하기 위해 결국 얘기를 꺼냈다.
"엄마, 여기 그때 거기 아니야? 우리 벚꽃 여행 가려다가 버스 못 타서 뛰어다니던 곳."
엄마는 그러네-하며 웃었다. 신호가 바뀌어 좌회전을 하며 말하길, 그때 여행사에 적지 않은 돈을 냈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고 했다. 그러고서 하는 얘기가 당시 엄마가 무슨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도중에 나와야 시간이 맞을 것을, 차마 빠져나오지 못해 끝까지 듣고 나오는 바람에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아휴 나도 참 미련하게-‘하며 말을 마친 엄마는 태연하게 올해는 진해에 가볼까? 한다.
이 일이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건 아니지만, 어쩐지 너무나 억울했다. 왜 나는 그때의 일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왔던 걸까. 왜 엄마는 속상한(그리고 그렇게나 생생한) 마음을 우리에게 전가해서 죄책감을 갖게 만든 걸까. 하긴 엄마도 몰랐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을 거라고는.
<느낌을 팝니다>라는 책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는 자신의 엄마가 '내가 널 키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하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이 ‘애먹이는 딸’이었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부모님도 다 돌아가신 최근에 자신을 키워주던 보모를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도 예쁜 아이였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고도. 이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감동적인 일이다-식의 문장이 쓰여 있었는데 참으로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늦게 알게 되었지만(그 사실은 다소 애석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라도 어린 시절의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혹시 나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오해를 풀어줘야지! 왠지 기억조차 못 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