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김 Sep 26. 2020

하루살이 인생

생일, 14 AUG 2020 @섬

A가 눈을 떴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곳은 마치 진공상태처럼 조용하고, 어두컴컴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암흑 속에서 A는 자신의 손발을 천천히 움직여보았다. 몸이 아무 것에도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더듬거리며 아래로 내려가보았다. 거기에도 역시 움직이는 것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곳이 어딘지 A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 어둠 속 오직 혼자라는 것 밖에는. 곧이어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자 그는 위로 아래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지칠때까지 공간을 탐색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아래쪽에 앉아있던 A는 순간적으로 위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느꼈다. 빛과 함께 들어온 공기는 이 곳과는 달랐다. A는 빠르게 위로 올라갔지만 들어오던 빛은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고, 다시 공간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B는 아주 모던한 흰색 유리창 앞에서 눈을 떴다. 쨍한 햇볕 아래 유려한 곡선이 투명하게 흐르고 있었다. 보이는 공간 내에는 오직 B와 그가 깨어난 요람만이 사방에 거울처럼 비치고 있었다. B는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유리창에 앉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수많은 작은 점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찌나 작은지 자신만큼이나 작아보였다. B는 왠지 우월감을 느꼈다. 이 정교하고 거대한 세상을 한눈에 내려다 본다면 누구나 이렇게 느낄 것이다. 약간 어지러워진 B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몸을 가다듬고 천천히 바깥으로 날아올랐고, 잠시후 뒤돌아본 그는볼 수 있었다, 자신이 깨어난 곳과 똑같이 생긴 곳들로 이루어진 이 장소에 자신말고도 다른이들이 있었음을. 그 곳에는 아까 자신했던 것처럼 유리창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로 가득했다. 자신은 그들 가운데 하나였을뿐이었다.


C는 매미 소리가 가득한 풀숲에서 눈을 떴다. 사방에는 자신처럼 이제 막 눈을 뜬 친구들이 보였다. 자신의 옆에는 아직 알에서 깨지 않은 형제들도 있었다. C는 기지개를 켜고 개운해진 몸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C라고 해. 

반가워, 나는 D야. D가 수줍게 인사했다.

친구들도 모두 오랫동안 잠들어있다 깨서인지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C는 D와 다른 친구들과 건너 강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같이 재잘거리며 이동하다보니 어디선가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모두 함께 물가로 가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던 그들은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음을 깨닫고 다시 눈을 떴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밤이 되자 곳곳에 하나둘씩 거대하고 동그란 빛들이 떠올랐다. C와 D 친구들은 호기심에 빛을 따라 갔다. 가까이 갈수록 동그란 빛은 거대해졌고, 몇몇 친구들은 그 압도적인 빛에 두려움을 느꼈다. 

D가 말했다. 가까이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C는 말했다. 내가 먼저 올라가보고 괜찮으면 얘기해줄게!

C는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갔다. 빛에 다가갈수록 뭔가 점차 더워졌지만 C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용감하게 올라갔다. 그리곤 거의 다다랐을 때쯤 친구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괜찮아 올라와! 

친구들이 C의 목소리를 듣고는 안심하고 그를 따라 올라왔다. 한편 D는 망설이며 마지못해 따라 올라갔다. 절반쯤 올라가다 숨을 돌리기 위해 잠깐 속도를 늦췄을 때였다. 짝!

아 뭐야, 여기 벌레 왜이렇게 많아.

남자가 말했다. 여자가 물었다.

모기야?

남자가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하루살이.




매거진의 이전글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