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매달리려면 오래 매달려야 한다
사실 근지구력 훈련을 아예 등한시했던 건 아니다. ‘지구력’을 해야 실력이 는다는 얘기는 늘상 들어왔다. 하지만 시작 홀드에서 탑 홀드까지의 결판이 빨리 나는 볼더링에 비해 지구력은 벽에 붙어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보였고(물론! 그래봤자 1분 내외다. 길어야 3분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루하게 느껴졌다.
사실 볼더링장의 ‘지구력벽’은 리드클라이밍과 관련이 있다.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특히 서울에 살고 있다면 집 근처에서 클라이밍장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갈 것 같은 커다랗고 세련된 볼더링장이 아니라 동네에 오래 있었던 것 같은, 작은 클라이밍장이 분명히 존재할 거다. 이런 클라이밍장은 대개 경력이 오래된, 중년 이상의 클라이머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암벽장은 벽에 홀드가 빈틈없이 붙어있을 확률이 높은데, 이는 리드 클라이밍을 실내에서 훈련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테다. 나아가서 이런 암벽장의 회원들은 리드 클라이밍뿐 아니라 자연암벽을 타러 가기도 할 거다. 많은 경우 이런 클라이밍장에서 ‘등산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리드와 자연암벽을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교육을 해준다.
클라이밍을 잘하려면 ‘지구력벽’에 많이 붙어봐야 한다는 조언은 바꿔 말하면 긴 루트에서 힘을 덜 쓰는 효율적인 무브를 연습하라는 뜻이다. 더해 오래 벽에 붙어 근력을 늘리는 게 클라이밍에서의 레벨업에 핵심라는 말이기도 하다. 열 개 이내의 홀드로 루트가 끝나는 볼더링에 비해 근지구력을 훈련하는 루트는 최소 스무 개 이상의 홀드를 잡고 나아가야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려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나는 클라이밍을 그만두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벨업의 방법이 있는데, 그걸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만두기는 아깝게 느껴졌다. 어쨌든 아득바득 일 년을 버텨왔으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 클라이밍장이 있는지 네이버지도에 검색해 봤다. 지하철역 근처에 딱 두 개가 나왔다. 그중 집과 조금이나마 더 가까운 곳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갈 용기가 없었다. 겨우 익숙하게 만든 볼더링 공간이었는데, 다시 낯선 장소에 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힙한 게 좋았다. 볼더링은 세련되고 멋져 보였는데… 동네 암장(클라이밍장을 대부분 이렇게 줄여 부른다)은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클라이밍을 계속할 거라면, 초급자 단계에 머무를 생각이 아니라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멋짐이 무슨 소용이람, 실력이 중요하지. 그리고 이걸 해봐야만 나는 내가 바라는 볼더링의 레벨로 갈 수 있는 거였다. 일 년 전 초여름의 퇴근길, 나는 결국 집 근처의 클라이밍장을 찾아갔다. 그곳은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1세대 산악인이 운영하는 작은 클라이밍장이었다. 체계적인 몸놀림을 배우고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짐작보다! 젊은이들 - 그러니까 내 또래가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볼더링에 치중된 클라이밍 생활을 마감하고 더 오래 벽에 매달리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지구력벽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벽에 가볍게 붙어 오래 나아가는 것 역시도 멋있음의 한 종류임을 깨달았다. 더불어 팔과 등에 근육이 생긴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유의미하게 근육이 생겼다 느껴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깨달았다. 나에게… 이두와 삼두가…?
솔직히 굉장히 뿌듯하다. 그리고 그동안은 그렇게 멋져 보이던 볼더링장에 거의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게 좋겠다. 일단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클라이밍을 하고 있으니 더 해낼 짬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볼더링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없어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재밌으니까. 만약 클라이밍이 하고 싶지만 볼더링에는 계속 좌절하게 된다면 근지구력 훈련용 클라이밍장을 권하고 싶다. 나는(물론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사람마다의 클라이밍 종목 적성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러닝도 계속하고 있었다. 러닝과 클라이밍을 병행하면 일주일에 5일을 운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함께 적절히 하는 직장인이었다. 물론 내 주변인들은 이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