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터 구성까지 이대로는 위험하다
비와이와 씨잼이라는 요즘 대세 래퍼를 나은 쇼미더머니5.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프로그램은 여성 래퍼들의 살벌한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다. 매 시즌마다 스타를 낳으면서 화제성 만큼은 확실했던 인기 콘텐츠였기에 쇼미더머니 이후 이어진 뜨거운 힙합 열기를 이어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언프리티 랩스타의 세 번째 시즌은 더욱 독하고 냉정해진 서바이벌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지 못하면서 일종의 실패를 맛봤다. 물론 케이블 예능인 만큼 시청률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1%대를 간신히 넘는 평균 시청률은 이전 시즌에 비해서 확실히 약해진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좌표다.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버린 악마의 편집 만으로는 인기를 끌 수 없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 케이스 되겠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엠넷의 프로그램 집필(?)력이 다소 무뎌졌다. 여론에 편승해 만들어내던 극적인 스토리를, 아쉽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쇼미더머니의 인기 덕분에 전국민적으로 힙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물론 이전부터 대중들이 찾는 힙합곡들은 많았지만 확실히 방송 콘텐츠로 자리잡기 시작한 요즘이 더 큰 전성기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힙합 붐을 이어오던 시기에 등장한 여성 래퍼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는 버전이 아닐 수 없다. 막연하게 남자와 여자만 바뀐 기획이 아니다. 우승만을 향해 나아가는 쇼미더머니와는 조금 다르게 여성들의 다양한 감정 스펙트럼을 첨가해 일종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기획 콘텐츠인 것이다. 그렇게 남성들만의 것처럼 비춰지기 쉬운 랩 문화에서 여성 래퍼들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훨씬 더 짜릿한 재미를 주며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디스 배틀과 트랙 쟁탈전과 같은 독한 미션들을 통해 단순히 우승을 위한 경쟁이 아닌 래퍼들 사이의 긴장감과 대결 구도 등을 흥미롭게 비추면서 매회의 재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총 8회 내지는 10회 정도에 달하는 방송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구도가 많이 필요하다. 일차원적인 라이벌 구도뿐만 아니라 역전 스토리 혹은 비호감 메이킹 등 악랄하지만 다채로운 포인트가 시청률 견인의 중요한 기점이 된다. 언프의 시즌 1,2는 다소 덜컹거리긴 했지만 캐스팅부터 편집까지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한 톡 쏘는 재미들을 양산해내는 힘이 있었다. 시즌 1에는 살벌한 경쟁을 알린 제시의 발언와 치타의 우승 스토리가 있었고 시즌 2에는 실력자 트루디와 미친 개로 우뚝선 예지의 흥미진진한 대결 구도가 있었다.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화젯거리가 있던 언프1,2는 시청률과는 별개로 실력 있는 여성 래퍼들을 수면 위로 올리며 케이블 서바이벌 예능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독해서 잘 됐다고 좋은 방송이란 게 아니다. 애초부터 좋은 방송이길 포기한 프로그램이 대중들의 니즈를 아는 꼼꼼한 기획으로 흥미로운 방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좋은 방송이냐 나쁜 방송이냐 애초부터 화두가 되기엔 너무 멀리 왔다.
곧 종영을 맞이하는 이번 시즌 3가 결국 히트를 치지 못한 건 바로 화제성을 만들만한 스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토리가 없었다는 건 크게 두각을 보인 실력자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즌 1에 이어 출연한 육잘또(육지담 잘하는 또라이...이런 비유 미안)가 나름대로 치열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으로 자리잡기에는 역시나 턱없이 부족했다. 대중들이 바라보는 언프리티 랩스타는 결코 '언니들의 슬램덩크' 같은 여성 예능이 아니다. 너무도 명확히 힙합을 소재로 한 예능이고 대중들은 래퍼들의 짜릿한 랩을 듣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랩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서바이벌이지만 시즌 3에는 마음이 갈 정도로 재밌고 호기로운 래퍼들이 없다. 수년간 갈고 닦은(?) 편집을 통해 몇몇 래퍼들을 씬의 중심으로 띄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편집으로 눈 속임을 하기엔 대중들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 여성 래퍼들이 단순히 실력이 없다는 게 아니다. 진진하게 보기에 시즌 3 10명의 래퍼들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 오죽하면 방송 중간에 등장하는 트루디의 아디다스 광고가 우승할 거라는 예측이 나올까.
이번 시즌의 가장 큰 변화는 서바이벌 탈락 제도다. 시즌당 한 두 차례 발생하던 탈락자 미션이 이번에는 거의 매 회마다 있다해도 무방하다. 서바이벌에 대한 정체성을 조금 더 살리면서 많은 래퍼들이 중도 탈락을 맞이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상대적으로 실력자들이 미션을 진행하도록 했으며 생존에 대한 부담감을 불어넣어 프로그램의 긴장을 더했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지만 결론적으로 엠넷의 전략은 실패다. 강화된 서바이벌이라는 틀 속에서 언프리티 랩스타의 콘텐츠적 재미는 점점 줄어들었다. 화제를 만들던 래퍼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실력자의 우위를 점한 이들은 부담 때문인지 가사 실수를 반복한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아슬아슬한 전개는 보는 이들 조차 탄식을 하게끔 한다. 영구탈락의 긴장보다도 재미 붙일 만한 구도들을 많이 만들었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늘어난 탈락 미션은 래퍼들의 부담을 높이고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낳았다. 여성 래퍼들 사이의 신경전이 주된 흥밋거리가 되어왔던 언프에게 라이벌 구도의 부재는 화제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초반부 제이니와 육지담이 발군의 '하드캐리'로 관심도를 높였지만 이전 시즌들의 치열함에 비해서는 다소 시시한 전개다. (심지어 제이니는 중도 탈락한다.) 이는 실력자들 사이의 랩 대결이 아닌 어그로성 말싸움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상 이 두 사람 이외에는 래퍼들 사이의 긴장이 거의 없어서 몇 차례 발발했던 디스전 역시 크게 흥이 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방송에 나오는 이들은 한 배를 탄 동료로서 누가봐도 너무 애틋하다. 평화로운 그림이 참 좋긴한데 시청자들의 관심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매번 화제였던 디스전 역시도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참 나쁘지만 디스전은 서로를 물어뜯기 전후의 리액션이 더 궁금한 싸움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편집으로 열심히 대결구도를 만들어놓고 결정적인 순간 디스를 맞붙이면서 대상들에 대한 왈가왈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번 시즌 3의 디스전은 오로지 랩을 위한 무대였다. 닦아 놓지 않은 대결구도가 없었기에 누가 누구랑 싸우던 크게 중요치 않았고 온전히 화제성 중심의 기획이었던 디스전은 그렇게 힘을 잃었다. 개인 디스전 이후 팀 디스전을 치르면서 일대일 싸움 이후 생길법한 멤버들 사이의 분노를 오히려 분산시키는 결과 역시 낳았다. 심지어 래퍼들은 탈락 부담 때문인지 가사 실수를 빼놓지 않았으니 도통 시원하지 못하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는 힙합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부차적으로 끌어내는 재미의 유형이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이다. 쇼미의 살벌한 서바이벌이 흥미진진했다면 언프의 생존문제는 본질적인 재미에서 조금은 벗어나있기에 문제가 된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래퍼들은 예선부터 본선까지 거쳐 선발된 우여곡절의 스토리가 없기에 탈락 문제에 몰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오히려 여성 래퍼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가 신경전이 훨씬 더 관심을 유발하는 지점인 것이다. 이와 같은 기획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면 이번 '언프'는 할 줄 아는 걸 더 잘하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음 시즌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