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관점은 왜 중요한가?
본격적으로는 아니지만 가끔 내가 하고 있는 평화학 과정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쓸 때, 나의 감정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분명 석사과정 공부를 하러 왔는데, 감정과 경험, 그리고 나의 관점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이건, 워크숍 때건, 혹은 친구들끼리 대화할 때도 "너를 더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학교의 목표가 자기 치유나 영성 공동체 건설도 아닐 텐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특히 2개월의 출석 수업 이전에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사전 세미나에서는 대놓고 '개인적 관점'으로 글을 쓰라고 한다. 특정 주제를 주고 2주마다 제출하게 되어 있는 과제는 그래서 1인칭으로 쓰도록 권장받는다. 학문적인 글을 1인칭으로 쓰다니!! 내가 평화학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평화학이 학문이냐?"라고 비웃는 듯이 물었던(지금은 모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하고 있고, 그래서 학문과 학문 아닌 것에 대해 엄격히 구분하시는) 선배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온라인 세미나에서는 평화학에 대한 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2주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다른 학생들과 각자의 과제에 대해 코멘트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몇몇 텍스트에 대해 읽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토론을 진행하게 된다. 2주마다의 과제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아니, 넌 평화학에 대해서 뭘 배우고 과제를 하는 거야?"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뭘 알아야 과제를 하지. 그리하여 다시 제기된 '유학 사기설' ㅡㅡ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시작된 1인칭으로 써야 하는 과제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온라인 과정의 첫 번째 과제는 이런 가이드라인으로 시작한다.
"당신의 학문적 글쓰기에서 첫 단계는 글쓴이로서 당신 자신의 관점에 대해 돌아보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어떤 형태의 연구에서도 능동적인 역할을 합니다. "누가 그 연구를 하는가"가 작업의 구조를 결정하게 됩니다. 모든 구조는 필연적으로 특정한 측면을 강조하고, 반면에 다른 측면은 옆으로 밀쳐놓습니다. 따라서, 그 연구 주제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 관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세계관을 심사숙고하고,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경험과 관심사, 당신 자신의 관점, 그리고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봄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연구의 속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요약하면: 그렇습니다. 당신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느낌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무수한 인용 도서와 논문, 그리고 체계적 구조와 3인칭 뒤에 숨은, 그래서 글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학문'의 글쓰기와는 처음부터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과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첫 번째 학기에서 수업은 종종 자기 탐구와 연결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내면을 살펴보도록 장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는 명상, 춤추기, 그림 그리기, 대화하기 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2주마다 역시 제출해야 하는 과제는 Reflection paper(직역하면 반성문이라고 해야 하나... ㅎ 그런데 당연히 반성문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2주 동안 배운 것들과 자신의 경험, 느낌을 종합하여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쓰게 된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명상 센터에 들어갔을 때를 제외하고 이토록 나의 내면에 관심을 갖도록 요구받은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이 무슨 학생들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실천가'와 '학자'의 중간이 될 수밖에 없는 평화 활동가로서, 평화를 중재하거나 갈등을 전환하려고 할 때, 나의 관점과 입장에서부터 문제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더욱이 평화와 갈등은 사람들의 마음을 접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나의 마음을 올바로 바라보고, 열려있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평화 활동가가 될 수 없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평화 세우기 Peacebuilding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는 존 폴 레더락의 책 '도덕적 상상력'의 서론에는 이런 말들이 나온다.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에 보편성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전문 분야를 집필할 때 사적인 측면을 내보이는 것은 다소 수상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바에야 결론과 방안에 있어 객관성이 담보됐다고 느껴지게끔 모델, 기술, 이론 잘 문서화된 사례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더 힘써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전문성을 깍아내리고, 이론과 실천이 양립할 수 없게끔 하고, 대중에게 실망을 안기며, 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몹쓸 짓을 한다. 개인적인 측면을 제거하려 애쓸 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시야와 심도 있는 직관 그리고 이 세계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모습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자원을 잃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학문'적인 영역을 논하면서 개인적인 관점과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당장 지금 진행 중인 온라인 세미나에서 나의 동료들은 내 과제에 "그래서 너의 느낌은 어땠어? 너는 무슨 생각을 했어?"라고 코멘트를 단다. 나의 관점과 객관적 세상이 연결되어 만나는 지점, 거기에 나의 평화학이 세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