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자의 육체를 마주하고 이별하며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찬란하게 살아있던 자가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파도를 타며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살아있음을 만끽하던 그가,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현장에서 뛰는 가슴을 격렬하게 느끼던 그가, 파도를 타고 내려와 이동하며 곧바로 뇌사 상태에 빠져버린다. '살아있음'을 정점으로 느끼다가, 곧바로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버리다. 그의 뇌사 전 삶의 순간은 생명력이 펄펄 끓는, 그의 인생에서도 손꼽히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사고로 인하여 뇌사 상태가 되버리고 다른 장기들은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장기 이식 수술을 하게 되는 과정이 그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자세하게 펼쳐진다.
그 시선들을 통하여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게 만든다. 생각의 끝에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토록 끈질기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생각들은 미로처럼 얽혀있으나, 생각해봄직한 질문들이었다.
두뇌를 통해 사고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이 이야기에서는 두뇌의 기능이 멈추어 사고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가설이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거의 매 순간 생각하고 판단하며, 가끔은 이에 더 나아가 이성과 논리로 깊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생각 하에서는 뇌사 환자의 경우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장기 적출 및 이식도 가능해지며, 여러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실제로 의학적으로는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생명력이 다했다고 보며, 이에 이 이야기에서도 그의 장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되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그는 살아있는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는 삶이 진정 살아있는 삶인가
그는 파도를 타는 것을 사랑하는, 말그대로 서퍼다. 그는 좋은 파도를 좋은 타이밍에 올라탔을 때 그 파도와 한몸이 되어 가슴이 뛰는, 찬란함과 짜릿함을 느끼는 시간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위험을 동반한다. 뇌사 상태에 빠진 서퍼인 이 청년은, 가슴이 뛰는 일을 사랑했고 그 일을 할 때에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을 테다. 그의 심장이 그에게서 뛰었을 때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수많은 격렬한 감정들, 우정과 사랑과 같은 충만한 감성과 마음, 미움과 같은 격정, 그만의 다정한 성향들 - 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있을때야 비로소 그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야기에서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심장은 심장을 넘어선다. 심장은 언어 속에 새겨져 있으며, 근육과 감정이 정확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늘 자리하며, 언어의 마법이 발휘되는 그 지점에 심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최첨단 기계 장치이자 초강력 상상 실행자인 심장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육체, 다른 인간들, 창조주, 신들과 맺는 관계를 규정하는 표현들의 요체이다."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지만 사실 조금만 돌이켜봐도 마음에 남는 내 생의 순간들은 심장이 뛰는 순간들이었다. 내 육체와 내 감성 모두가 풍부하게 채워졌던 경험. 그것은 단순히 지나치는 감정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너무나 강렬하여 이 시간이 지나더라도 오랫동안 내 인생에 자리할, 설레는 과거이자 익숙한 미래였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일들을 "제대로, 오래" 하고자 많은 이들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발버둥치며 산다. 사랑을 하고 지속시키기 위하여, 정말 좋아하거나 욕망하는 일들을 업으로 삼기 위하여.. 이런 측면에서는 심장이 뛰는 삶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시간이 아닌가.
결국은 심장과 뇌는 생명력과 서로 직결되어 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최근에 다시 받아보았다. 뇌졸증 등의 사유로 뇌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4분 이내에 뇌가 피가 공급되어야 한다.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4분 이내 심장을 제대로 자극하여 뇌로 피를 흘려보내야만 누군가의 뇌사 상태를 막을 수 있다.
이처럼 신체의학적으로도 심장과 뇌는 긴밀하게 연관성이 있다. [심장을 열심히 자극하여 뇌가 죽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 문장이 명확한 "fact"이자 인생의 의미를 담은 철학적 이야기로도 들린다. 살면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충격과 사고에 우리는 모두 대비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생각하는 삶을 멈추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론 그것들이 각각의 목적과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위하여 사고한다. 제대로 된 이성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 때론 심장이 뛰는 게 무엇인지 고찰하고 부딪혀봐야 한다. 두 가지를 사실은,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에 그 두개의 측면을 부단히 고민하고 부딪혀가야 함을, 나이가 들어가며 느낀다. 그 두가지를 잘 버무려 가며 "제대로 찬란하게" 살아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