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3. 외모강박2
나를 가두는 칭찬들
내 생에 첫 화장품은 17살, 인터넷에서 산 트러블 흔적과 잡티에 효과적이라는 비비였다. ‘재생’ 효과가 있다고 유명한 제품이었다. 그전에는 기껏해야 백탁으로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선크림 정도가 다였던 나는, 청소년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나는 여드름에 고통받고 있었다. 내게는 엉망인 피부가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드름은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젊음의 증거’가 아니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걱정스러운 것, 사이가 멀거나 나쁜 이들에게는 나를 욕할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쟤 여드름 진짜 심하지 않냐?”, ”난 저 정돈 아니라 다행임” 등등. 한창 예민한 시기인 만큼 스트레스와 울분이 폭발했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아서! 부모 당신들 탓이라며 피부과에 보내 달라 징징댔다. 결국 몇 번 받게 된 피부과 관리는 흉터만 남기며 얼굴을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좌절하였으나 하는 수 없다, 가리기라도 잘해야지.
대학을 입학하고 이제는 ‘여자가 좀 꾸밀 줄 알아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얼굴에 창궐한 여드름은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자취하면서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패턴을 고수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테다. 나는 트러블을 가리기 위해 계속해서 화장품을 찾았으며, 여드름에 좋다는 제품들은 이것저것 사서 발라보았다. 그러나 큰 효과를 본 일은 없었다.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고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체념하게 되었다. 좋은 피부를 타고 난 친구를 여전히 부러워하고, 때때로 울며 죽고 싶다고 생각하여도 내 의지대로 바뀌지 않는 걸 어떡하나. 대신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약속장소에 나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늦어도 최소한 비비, 파데는 발라주어야 했다. 피부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외적인 미에 대한 강박도 거세졌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몇 년 후인 지금, 나는 나를 ‘꾸미는’일에 흥미를 잃고 화장품도 옷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인가? 무엇이 계기였던 것일까?
그저, 나는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평가당할 이유가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스스로 옥죌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것이 내 살과 건강을 깎아 먹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선 내 몸에 대한 긍정이 우선돼야 했다.
피부에 온갖 정성을 쏟았던 때를 떠올려본다. 점차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어느 순간 피부가 건조하게 변했다. 예전처럼 얼굴 위로 하루가 다르게 여드름이 꽃피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할퀴고 간 흔적들이 있고 피곤한 날엔 한두 개씩 올라올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깨끗한 피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화장을 하지 않는다. (면접을 본다든가 하는 특수한 상황 빼고는) 가끔 선크림 바르는 걸 빼먹고 다녀 얼굴에 주근깨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뭐 어떤가?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아름답지 않게 살 권리가 있다.
이 같은 의식의 변화는 나에게도,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더 이상 “예쁘다”는 말을 외적인 모습에 대한 칭찬으로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의 뛰어난 면모들이 외적인 꾸밈에 가려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뭐 아무리 인간이 시각적인 동물이라지만, 외면이 그 사람을 형성하는 모든 건 아니지 않나. 선물을 풀 때도 알록달록한 포장지나 껍데기보다 안에 든 것이 궁금하듯이. 사람을 상대할 때에도 그의 아름다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노력을 쏟기로 했다.
나는 나를 위해 가장 먼저 내 정신건강을 생각하기로 했고, 꾸밈에 몰두할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생산적으로 쓰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더 이상 꾸밈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까웠다. 그리하여 탈출할 것을 마음먹었다. 나를 억압하는 미의식과 “매끈하고, 깨끗하고, 말라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으로부터, 칭찬으로부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