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3. 외모강박3
인생에서 가장 가벼운 지금
친구네 집에 며칠 있으면서 몸무게를 쟀다. 우리 집엔 체중계가 없다. 고장 나서 몇 번을 내다 버린 이후에 새로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그런데 살짝 올라가 본 체중계의 숫자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46킬로, 자고 일어나서는 45킬로였다. 정확히 45.2킬로. (헐 대박!)
예전 같으면 살이 빠졌다면서 팔짝팔짝 뛰며 자랑하고 다녔을 숫자다. 저체중이거나 저체중을 간당간당하게 면하는 이 숫자가 내게 ‘이상적’이며 ‘예쁜 무게’라고 생각되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이라도 40킬로 중반만, 아니 후반대만 되었어도!’라고 생각했던 과거. 그 당시에도 멀쩡히 ‘표준 체중’이었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뭐, 위장이 나빠지고 적은 운동량에 근육과 수분이 빠진 결과라고 예상한다. 오히려 빠지면 빠질수록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다.
아무렴, 살보다 건강이 우선이어야지.
이리 생각하기까지 마음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다. 내게 몸무게에 대한 강박감이 가장 극심했을 때는 한참 성장기인 고등학생 시절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식탐이 넘치던 시절. 마음껏 먹고 싶은데, 다 먹으면 살이 찌고 배도 더부룩하게 부르고. 이때의 해법은 화장실에 가서 먹은 것을 죄다 게워낸 뒤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 음식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만큼 비워냈으니 살은 안 찌겠지? 얼토당토않게 결론 내고 마음 편해했다. 그 결과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경악스러운 일이다. 거식증에 걸리지 않은 게 용했지) 다행히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에 게워내는 버릇을 고치고도 굶거나 폭식하거나, 식사량은 들쭉날쭉했다.
왜 그리 몸무게에 집착했을까? 나는 옷발이 잘 받는 ‘날씬한’ 몸을 갖고 싶었다. 슬림하고 길쭉한 몸매가 이상형이었다. 그와 달리 나는 상체와 비교적 통통한 다리 때문에 스스로 ‘하체 비만’이라고 생각했다. 키도 작은데 통통하기까지 하다니! 하지만 키는 늘릴 수 없으니 살을 빼자.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이어트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이조절 말고도 날씬한 다리를 위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찾아서 했으며, 어두운색 하의를 입는다든지, 치마를 입어 착시효과를 노린다든지 하는 노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는 여름에 더욱 잘 드러났다. 붙는 옷이나 날씬한 상체를 드러내는 옷을 입으면 “살 빠졌어?”라는 말은 꼭 들었다. 불편하지만 바지보단 허벅지를 가려주는 치마나 원피스를 입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하는 ‘예쁘고, 날씬해 보인다'는 칭찬에 중독되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식사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종일 자고 일어나 한 끼. 또 새벽까지 깨어 레토르트 야식을 먹고 후회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잘 체하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한 끼를 먹으면 몇 시간을 배불러 했다.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양이 줄고 살이 빠졌다. 나는 그런 식이장애가 어찌 되었든 “몸무게가 그거 밖에 안 나가?”, “너 참 날씬하다”라는 칭찬이 듣기 좋았다.
당연한 순서로 위장이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위염이 생기고 속이 뒤집히는 감각을 자주 느꼈다. 조금이라도 기름지고 자극적인 것을 먹으면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떡하나, 일을 안 한다고 위장을 해고할 수도 없고. 투덜대면서도 무게가 줄어가는 건 좋았다. 여전히 먹고 싶은 걸 먹고 본질적인 문제를 방치해둔 것이다. 그렇게 인생 최저 몸무게를 하루하루 갱신하고 있었다. 다이어트도 운동도 하지 않는데, 원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위장 건강이 나빠진 탓이다. 그런데 체중계에서 내려오며 ‘노력 없이 빠져서 기분이 좋다’고 느낀 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사회가 부여한 미적 기준에서 이렇게나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구나!
건강과 내 몸의 기능은 한참 뒤로 미뤄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