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4. 불규칙한 식습관1
먹고사니즘의 비애
앞서 외모 강박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마르고 싶은 욕심과 자기관리의 부재는 내게 식이 장애와 위장병을 안겨주었다. 나도 물론 어찌 건강해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면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미 망쳐 둔 위장은 건강한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돌아올 텐데, 낮에는 얄팍하게 끼니를 때우고 야밤에 배고프다고 생라면을 뜯었다. 누군가는 어릴 적에 한 입만 하며 손 내밀던 그것도 이젠 나름 전자레인지에 일 분 정도 돌려 바삭하고 고소하게 만들어 먹었다.
자취생 시절 가난한 냉장고는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었다. 요리를 싫어하거나 못하지 않는 나라도 혼자서 해먹을 수 있는 양에 한계도 있고, 그만큼의 식재료를 구하기도 번거로우며, 결국 남기거나 뒤처리하기 귀찮으니 사 먹게 되었다. 집에서 해 먹는 건 기껏해야 김치볶음밥 따위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 외에, 즉석밥을 데워 먹는다든지 1인분 레토로트 식품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과일은 저렴한 바나나 같은 것을 드물게 사 먹었다. 그 좋아하는 복숭아도, 딸기도 맛보지 못한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체력은 자꾸만 떨어지며, 건강하지 못한 삶을 자꾸만 유지하게 되는 것은 이런 식습관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먹던 게 이렇다 보니 자꾸 영양 불균형한 음식을 찾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대충 한 끼 때울 수 있는 음식, 달거나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을 말이다. 어쨌거나 내 주변 자취생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나는 점차 건강한 요리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렸다.
건강한 요리란 뭘까. 건강식을 생각하면 역시 ‘집밥’으로 대표되지 않을까. 본가에서는 음식할 때 모든 걸 손수 만들었다. 기본적인 조미료들도 시골에서 농사지은 것들로 남다른 감칠맛이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시제품은 맛이 별로라며 엄마가 고집하는 것이었다. 식재료들도 재래시장에서 골라 사 오는 정성을 들였다. 본인은 동생과 나를 ‘먹이는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제일 행복하다고. 그 어떤 어려운 요리라도 엄마는 척척 해냈다. 김장을 하면 외가 식구들이 모두 우리 집 김치를 받아먹었다. 배달음식으로 대표되는 보쌈이나 갈비찜도 집에서 해먹을 정도였으니.
나는 그만큼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별다를 게 아니라 냉장고에 들어간 식은 요리는 데워먹는 법이 없었다. 당장 만들어 따끈한 요리가 아니고서야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치원 다닐 어릴 적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반찬 타령을 했다고도 하니, 알 만했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는 날이면 친구들이 ‘요리 잘하는 엄마’를 부러워했고, 딸인 나는 자부심을 느꼈다. 교회 사람들이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날에도 엄마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해서 한 상을 차려냈다.
그런데 그런 요리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혼자 밥을 해 먹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일단 설거지부터가 한 트럭으로 나오는걸. 쉽고 맛 내기 쉬운 요리에서 점차 커피와 빵으로 때우는 일이 늘었다. 내 주변 사람들을 이를 지적하면서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 먹는다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