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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Aug 13. 2024

하얀 양말을 신은 신랑

하얀색이면 어떻고 검정색이면 어때!




때는 바야흐로 결혼식 당일이었다.

결혼식 전부터 신혼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옷에 영 관심이 없는 남편이 출근할 때 상의와 하의가 어울리게 매칭해주거나 날씨에 알맞은 겉옷을 챙겨주던 나였지만 

중요한 날을 앞두고 전날부터 머리가 아파오던 탓에 당일 아침에는 내 한몸 챙기기 바빴다.

전날 밤에 결혼식에 필요한 준비물은 미리 빠짐없이 챙겨두었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준비물만 챙겼지 당일날 입고 갈 속옷 한 장 양말 한 켤레까지 챙겨놓지는 않았었기에

바쁜 아침에 무심코 서랍에서 집어든 양말을 신을 수밖에 없었는데...




"신랑님, 양말이..."

본식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신부대기실에서 신랑신부가 함께 사진을 찍는데, 사진기사님이 던진 첫마디였다.

예복이 어두운 색이기에 분명 검정 양말을 신고 오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신랑이 떡하니 신은 건 하얀 양말이었다.

"ㅇㅇ아... 빨리 가서 검정 양말 사오든지 동생이랑 바꿔 신든지 해..."

다행히 남동생이 신고 있던 양말이 검정색이었고, 남편은 양말을 바꿔 신고 왔다.




이 일은 이후 한동안 남편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너, 결혼식에 하얀 양말 신고 온 신랑이잖아.^^"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하얀 양말이 뭐 어때서!"라는 입장이다. 

사진기사님이 너무 깐깐하다나. 무지개 양말만 아니면 된다나.


남편은 늘 이렇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완벽주의자다. 사소한 것이라도 틀어지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혼여행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어이없는 실수로 돈을 날렸을 때도, 남편은 '그럴 수 있지'라며 넘겼고, 나는 분노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할 순 없어. 예상치 못한 손해는 발생하기 마련이야.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도 항상 예상치 못한 리콜에 대비해 판매비용충당부체를 마련해 두지. 여행 예산을 짤 때도 그렇게 해야 해."




어차피 세세하게 계획을 세워 봤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긴 알지만,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서 나를 계획 안에 가둬두어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고 조금은 남편 성격을 닮아가는 것 같다. 든든한 남편과 함께하면 별로 걱정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행 계획 같은 걸 세울 때면 P인 남편과 J의 나의 성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곤 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함께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다.


힘닿는 대로 하되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면 된다.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완벽도 단계적으로 완성해가는 거다.

대충살자... 자기 결혼식날 하얀 양말 신은 신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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