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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Dec 03. 2017

꿈은 무의식의 통로다

프로이트,『꿈의 해석』


꿈은 무의식의 통로다


우리가 꾼 꿈의 내용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 우리는 왜 비현실적 꿈을 꿀까? 꿈이 현실의 모사라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꿈의 내용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꿈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그 무의식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 프로이트는 특히 성적 욕망을 강조했는데, ‘리비도’로 발현되는 그러한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의 통로”라고 말한다.  즉『꿈의 해석』을 한 마디로 말하면,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그 무의식은 욕망이다. 욕망의 억압이 꿈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 욕망이 만들어낸 재료들이 작업 과정을 통해 꿈이 된다, 라는 것이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기억의 밭에서 올라오는 꿈’이라고 말한다.  


간밤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의식이란?


그렇다면 무의식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것에 비유를 하자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핸들을 반대쪽으로 꺾어야 한다”라는 상식이 의식이라면 무의식은 그게 체득되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이 무의식이다. 이러한 무의식은 우리 의식에 대단히 큰 개입을 한다. 그러니까 무의식으로 한발 다가설 수 있는 꿈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 정신을 탐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신경증, 즉 노이로제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꿈이 인간 무의식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으로 정립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최면요법을 통해 환자가 직접 자신의 마음상태를 말함으로써 감정의 배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야기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카우치’라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프로이트가 던져주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환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게 되었다. 


그렇게 프로이트는 환자의 억압된 생각의 단서를 찾고자 하였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주목한 것은 이렇게 했을 때 사람들이 꿈 얘기를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 우리의 무의식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꿈을 이용하면 무의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고대에 꿈을 어떤 상징이나 예언으로 해석했던 것과는 다르다. 프로이트는 꿈 전체를 보려고 하지 않고 부분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각각의 재료로서 보았기 때문이다.   


간밤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꿈은 소원 성취다


프로이트는 잠재된 꿈의 사고가 결국에는 “나는 무엇인가를 원한다”라는 소원 성취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꿈을 해석한 후 무의식이 욕망하고 있는 소원의 형태로 재해석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소원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성적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성적 욕망은 생물학적 욕구가 아니라 타인과 결합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회적 욕망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그 소망이 ‘하고 싶다’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하고 있다’라는 현재형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물을 마시고 싶다는 소망, 즉 꿈의 사고는 물을 마시고 있는 꿈, 즉 소원이 성취된 꿈의 내용으로 드러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드림캐쳐를 방문에 걸어 두면 좋은 꿈을 꾼다고 믿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꿈은 욕망의 왜곡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석할 꿈은 어떻게 확정할까? 우리가 간밤에 꾼 꿈은 어디까지가 진실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설명할 수 없다. 망각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또 자아, 초자아, 원초아라 불리는 이드로 구분했다. 이드는 충동적이고 본능적이며 비이성적인 분출욕구로 완전히 무의식 안에 잠겨있다. 초자아는 이를 억압하는 이성으로, 대부분 무의식 안에 잠겨있지만 위에 의식 밖으로도 조금 나와 있다. 자아는 이 둘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무의식과 의식에 걸쳐있는데 의식에 좀 더 많이 있다. 


앞에서 꿈은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 욕망이 이렇게 도덕적인 초자아에 의한 검열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고 왜곡된다. 예를 들어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은 꿈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은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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