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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 Madigun Apr 12. 2016

Walkholic Couple in Japan(3)

긴길나그네 커플 in 일본(3)

도쿄에서 세 번째 아침이 밝았다. 사실 원래는 이 날 도쿄의 대표적인 놀이공원인 후지큐랜드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역시나 우리의 계획은 실현된 사실이 없다. 차선책으로 내놓았던 지브리 박물관 역시 휴관일이라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으로 인해서 기각.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된 것이 만화 슬램덩크 오프닝 영상의 건널목이 있는 가마쿠라.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여행의 또 하나의 테마가 시작된다.


가마쿠라로 떠나는 길


아침으로 먹은 우동과 튀김들

가마쿠라로 출발하기 전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들어간 곳은 숙소 1층에 있는 우동집. 마루코가 홍보를 하고 있는 컨셉의 가게였는데,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은 국내의 마루가제면과 비슷한 형태였다. 튀김이나 우동 등을 별도로 선택하고 마지막에 우동을 선택하면 이를 한 번에 계산하고 먹는 형태로 자기 스타일대로 메뉴를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의 선택은 고로케와 가라아게, 오징어튀김과 돼지고기 실파 우동.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맛집이라기에는 뭔가 살짝 부족한 느낌.


배도 채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가마쿠라로 출발하였다. 다행히(?) 오늘의 시작은 지하철.

에노시마 전철을 타기 위해 도착한 후지사와역

아키하바라를 출발해 신바시를 거쳐 도착한 곳은 후지사와. 여기에서부터는 유명한 에노시마 전철로 갈아타게 된다. 슬램덩크와 스쿨럼블을 통해서 유명해진 에노시마 전철은 대표적인 노면전철(법적으로는 일반전철이라고 한다)로 흔히 생각하는 동네 버스마냥 돌아다니는 전철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가마쿠라로 가던 도중 무작정 에노시마에서 하차를 하게 된다.


아름다운 에노시마 그리고 맥주


에노시마역의 모습

에노시마에 내린 이유는 단순히 원래 목적지였던 가마쿠라고교앞역(鎌倉高校前)보다 먼저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가마쿠라로 이동하면서 나름의 정보를 검색해보니 에노시마가 꽤나 유명한 관광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아주 사랑스러운 모습의 동네를 만나게 된다. 에노시마에 내린 순간 우리 둘 다 모두 이 곳에 반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뜻한 날씨와 새파란 하늘, 그리고 아기자기한 동네의 모습은 어찌보면 우리가 바래왔던 이미지의 마을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더운 것을 싫어한다. 몸에 열이 많다보니 여름은 말 그대로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힘든 계절이고,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계절이다. 그러다보니 여름보다는 겨울을 반기는 편이고, 이왕이면 옷이 두꺼워서 움직이기 불편한 겨울보다는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다. 반면 누피는 추위를 많이 타다보니 겨울이 힘든 계절. 게다가 따뜻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니 추위에는 더욱 약해져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따뜻한 날씨에 누피는 기분이 완전히 업되었고, 겨울을 벗어난 날씨에 나 역시도 즐거움을 느끼는 적절한 상태로 에노시마 탐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파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에노시마의 초입 풍경

에노시마 섬은 생각보다 큰 섬은 아니었다. 설렁설렁 걸어다니다보면 다 돌아다녔네? 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크기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기만큼 볼 것이 없는 그런 섬은 아니었다.

가게의 수호묘(?)들

좋은 날씨를 벗 삼아서 둘이 함께 걷다보니 주변에는 문어센베를 팔기도 하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고양이들이 문지기처럼 자리를 잡고 식빵자세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섬이다보니 주변에는 항상 바닷가가 보였고, 섬의 산을 오르다보니 주변의 경치는 점점 더 넓고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에노시마가 관광지역이다보니 관광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관광지들이 존재했다. 우리나라 남산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어놓는 곳이나 에노시마 섬의 가장 높은 곳에서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루미나리에를 만들어 놓은 정원도 있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곳은 전망대. 전망대 자체는 생각보다 높은 편은 아니였지만 애시당초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놓으니 에노시마 섬과 그 주변 바닷가들의 모습을 한 눈에 보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렇게 에노시마 섬의 탐방을 마치고 가마쿠라고교로 이동하려는 찰나 우리는 운명적인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정신줄을 놓게 만든 에노시마 맥주

그건 바로 에노시마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지역 맥주인 에노시마 맥주!

정말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대체 얼마만에 먹어보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는데 한 모금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정도로 맛있는 맥주였다.

필자만이 아니라 함께 마신 누피도 반하는 맛이었고, 그렇게 우리들의 여행의 세 번째 테마인 지역 맥주 탐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에노시마 맥주는 사진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것들도 존재했다. 아쉬웠던 점은 처음이라 둘이서 하나만 먹었다라는 사실. 그리고 가마쿠라에 가면 팔겠지라는 어떻게 보면 매우 안일했던 생각을 했던 점이 지금도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구해서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다시 생각나는 맥주 중에 하나이다.

맥주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에노시마 섬을 떠나서 이제 슬램덩크의 명소 가마쿠라고교앞역으로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석양을 등지고 떠나온 에노시마 섬

에노시마 섬에서 가마쿠라고교까지는 해안가를 쭉 따라서 걷기만 하면 되었다. 바닷가를 옆에 끼고 반대편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보면서 걷다보니 정말 가마쿠라고교까지는 순식간이었다. 특히, 역에 가까워지면 에노시마 전철이 왜 노면전철인지 알 수 있다. 차도와 인도와 철도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정감이 가게 된다.

가마쿠라고교로 가는 길의 누피와 노면전철 에노시마 전철

그렇게 도착한 가마쿠라고교앞의 건널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슬램덩크 주제곡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우리 함께 한 맹세위해 모든걸 걸 수 있어
힘든 시간들이지만 난 웃을 수 있어
우리가 기억하는 슬램덩크 오프닝의 그 곳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에노시마전철이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가마쿠라고교앞 역의 누피(나의 여친은 뒤통수)

이 곳이 더욱 인상깊었던 것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한 모습이나 사진기를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보다 이 곳을 지나다니는 여러 운동부 학생들이었다.

일본은 방과 후 클럽활동이 활발하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도복이나 죽도를 들고 이 곳을 지나 역으로 가거나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야간 자율학습이나 학원을 가고, 그렇게 지친 어깨로 집에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곳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친구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참 부럽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취업하는 법과 취업해서 야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성장에 큰 이바지를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건널목을 떠나 다시 에노시마 전철에 몸을 싣고 떠난 곳은 이 열차의 종점인 가마쿠라였다.

가마쿠라는 막부시절 사찰들도 존재하는 관광지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인지도나 방문객들의 유입적인 면에서는 에노시마에 비해 많이 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이쪽 동네가 소위 말하는 부촌이다보니 관광지보다는 잘 사는 동네의 느낌이 많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노시마 전철의 종착지 가마쿠라역

가마쿠라 역에서 내려 우리는 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까막눈 커플이 이정표를 보고 무작정 발길이 닿는대로 걷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걱정을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었고 새로운 개척과 같은 일이었다.

동구리공화국 앞의 지지와 누피

일본 곳곳에 있는 동구리공화국은 항상 들리는 코스 중 하나가 되었고, 에노시마에서는 놓쳤지만 가마쿠라의 지역 맥주는 이번 일본 여행 중에 마셨던 맥주 중에서 단연코 최고였다(숙소에서 마셨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나서야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가마쿠라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꼬박 하루를 에노시마부터 가마쿠라까지 가나가와 현의 가마쿠라 시에서 보냈다. 너무나도 맑고 따뜻한 날씨와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주택들과 자연환경은 진심으로 여기에 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도 도쿄에 직장만 구한다면 통근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도쿄로 통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도 부촌으로 통하는 동네다보니 집 구하는게 제일 문제지만, 그보다도 난 아직 노예계약이 끝나지 않았다는게 제일 큰 문제였다.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つるがおか はちまんぐう)의 참배길에서 누피

그렇게 일본 여행의 세 번째 날. 그리고 도쿄 여행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오사카로 넘어가서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산책을 하게 되었다.




Routes & Steps

Day 03 | 14.56km / 19,960 steps | 도쿄 - 에노시마 - 가마쿠라 -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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