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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클라이언트

by 전이서


건축가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는

연애보다 복잡하고, 계약보다 미묘하다.


처음엔 늘 따뜻하다.

“선생님, 선생님 작품 너무 좋아요.”

그 말은 설계계약서보다 강력한 마법의 문장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 마법은 현실로 교체된다.


“이 벽… 없애면 안 될까요?”

“여기 유리 더 크게, 햇살이 확 들어오게요.”

“근데 단가는 그대로죠?”


건축가는 미소 짓는다.

표정은 미소지만, 머릿속은 구조계산 중이다.

‘저 벽이 사라지면… 나의 철학도 함께 무너진다.’


그럼에도 그는 대답한다.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이 말은 ‘이미 검토 중입니다, 마음속에서 폭발적으로’라는 뜻이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클라이언트는 꿈을 말하고,

건축가는 비용을 계산한다.

둘 다 현실을 바라보지만, 서로 다른 창문으로.


마지막엔 늘 이런 대화가 남는다.


“선생님, 이거 제 생각엔요…”

“아, 네. 건축은 원래 다 그렇죠.”


그리고 건축가는 도면을 저장하며 속삭인다.


“건축은 결국,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꿈을 그리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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