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잠시 나를 놓아주는 시간
건축가의 퇴근
건축가에게 퇴근은 ‘일이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일이 잠시 나를 놓아주는 순간이다.
그는 매일 약속한다.
“오늘은 제발, 제 시간에 나가자.”
하지만 그 약속은 늘 도면 아래에 깔려 있다.
밤 10시, 그는 컴퓨터를 끄고,
그 위에 다시 켠다.
“이건 그냥 마지막 저장이야.”
그 말은 늘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결국 퇴근은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그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조명보다 창백하고,
도면보다 낡았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설계한 집보다,
내가 살 집이 더 멀게 느껴진다.”
집에 도착해 불을 켜면,
빛의 각도가 이상하다.
“이건 동선이 문제야.”
결국 그는 소파에 앉아
‘내일 수정할 평면’을 떠올리며 잠든다.
“퇴근은 끝이 아니라,
다시 설계로 돌아가는 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