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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Dec 17. 2016

움직인 마음의 무서운 위력

<밀정>(The Age of Shadows, 김지운)

영화 <밀정>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9월 24일에 쓴 글입니다.


내러티브에 집착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과관계와 개연성이 중요했다. 우연한 것은 저속해 보였다. 그런데 멜로영화을 볼 때면, 간혹 두 남녀의 사랑이 설득되지 않았다. 낯설었다. 으레 그러하듯이 이야기가 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실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뚜렷한 이유가 없이, 그저 빠져드는 것인데, 그 설득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나. 잘생긴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평범한 남자와 잠시 눈이 마주쳤고 몇 마디 주고 받았을 뿐인데 사랑에 빠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밀정>은 마치 정채산의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대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이동진은 이 영화의 단점의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는데,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펼친 다음에 저절로 '마음의 움직임은 무섭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끔 하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정반대의 방법으로, 결론을 먼저 꺼내놓고, 그것을 그린다. 마음이 움직이니까 이정출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거다. 왜 이정출이 정채산의 회유에 쉽게 흔들렸을까, 왜 이정출이 의열단을 도왔을까, 왜 이정출과 김우진의 사이에서 의심은 없을까 등의 질문들은 무색하다.

이정출은 애초에 양심이 터럭조차 없을 만큼 냉정한 친일파가 아니다. 영화는 그런 친일파를 이정출과 대립하는 하시모토로 그리고 있다. 결국 경성으로 가는 기차에서 다소 쉽게 죽어버리는 하시모토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하시모토 유형의 친일파와는 또 다른 지점에 있는 이정출의 내면적인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그렇다고 이정출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 영화의 프롤로그는 단순히 김장옥의 죽음을 그리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다. 김장옥의 죽음은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상 그다지 중요치 않다. 이 프롤로그는 이정출이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다. 독립 운동을 하던 시절의 친구였던 김장옥을 체포하려 할 때, 그가 경찰들을 향해 김장옥을 죽이지 말라고 유독 다급하게 외치던 이유는, 의열단원을 생포하라는 상부의 지시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김장옥과의 장면에서 이정출 역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에서 충분히 그런 갈등이 느껴졌으나, 그것이 좀더 확실시 되는 이유는 김우진과의 첫 만남 술자리에서 그가 툭 내뱉은 말에 있다. 서로의 의도를 숨기고 접근하는 중에 연결고리로써 김장옥 이야기를 꺼냈으나, 사실 이정출 입장에서 김장옥이 죽기 직전 자른 발가락이 "참 가볍더라"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대사는 이정출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정출은 영화의 시작부터 '그런' 인간이다.
 
그리하여 정채산을 만난 뒤로 이정출의 설득되지 않는 행동들은 그 자체로 본래 설득되지 않는 것이기에 외려 현실적이다. 그 행동에 굳이 설득의 덧붙임이 있었다면 쓸데없이 장황한 것이다. 그런데 설득하지 않으니 서사적인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지운 감독은 그 공백을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로 채운다. 그것이 서사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틀에서는 일반적인 것과 달리 예외적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인물의 행동의 모든 이유가 되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과 감정이기 때문이다.

<밀정>은 첩보 영화의 외피를 둘렀지만, 홍보와는 달리 누가 밀정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영화의 서스펜스를 배가하지 않고, 미스터리를 증폭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열차 시퀀스를 지탱하는 주요 스토리 중 하나인 '의열단 중에 밀정이 누구인가'는 김우진의 꾀가 민망하리만치 이미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열차에서 하시모토가 김우진을 찾아내는 장면 역시, 긴장감을 높이는 것은 하시모토가 김우진을 발견하는 것보다 하시모토에게 이정출의 마음이 들킬까 하는 염려에서 기인한다. 사실, 초반부터 이 영화는 마치 누가 누구에게 정체를 들키고 이런거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하는 냥 뒷통수를 친다. 이정출과 김우진의 첫 만남에서 이정출은 자신의 소속을 과감히 밝히고, 정채산 역시 이정출에게 자신의 모습을 허무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의 첩보 장르는 누가 스파이인지를 밝히는 것보다 그 영화들의 스파이들이 정치적,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일련의 고뇌를 겪는 것처럼 친일과 독립 운동의 양 극단을 오가는 이정출의 딜레마를 부각시키는 것에 일조한다. 무엇보다 시대의 공기에 집중하고 그 속에 위치한 이정출의 내면을 따라간다. 먹고 살기 위해 강탈과 강압의 체제를 수긍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밀정>은 독립운동가와 일본의 오락적 싸움으로 점철된 여느 일제강점기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그 시대를 곡진하게 체감하도록 한다. 김지운 감독은 인터뷰에서 경성행 기차 시퀀스를 말할 때, "이 기차는 단순히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향하는 운송 수단이라기보다 당시의 역사성, 시간성, 세월을 대변하는 존재로 나는 생각했다. 시대가 이정출과 김우진이라는 두 사람을 기차가 가는 방향처럼 자꾸만 어디로 밀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속에 타고 있는 인물들의 동선 또한 그들의 정체성과 내면, 목표의 동선과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말로 그 시퀀스에서 기차는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의 축소판이었고, 그 속에 김우진과 하시모토 등은 각자의 목적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 바빴으며, 이정출은 표류했다.

김장옥의 발가락은 너무 가벼웠고, 연계순의 시체는 너무 작았다. 그들의 의지와 정신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정출이 그 부채의식 속에 의열단원들을 대신하여 성공한 거사는 시종일관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 있던 김우진의 얼굴을 마침내 온전한 빛에 누이게 했다. 물론 여전히 이정출에게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정출은 친일파인가 의열단인가. 그러나 그 이분법적인 가름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믿으며" "실패해도 나아가야 한다"는 정의를 깨우치는, 움직인 마음의 무서운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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