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케메케 Aug 01. 2023

통합을 향해 가는 길


애니어그램 지도는 일종의 '성격 혈관'과 같아서, 어느 한쪽이 막히면 그것이 그의 고착, 즉 성격이 된다. 9번은 3번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서 9에  피가 몰려있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쉽다. 성취하지 않은 결과 '나태한 자아'가 되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평화를 추구하는 자아'라 할 수 있다.


"그럼 9번이 부지런해져서 3번이 되면 통합이네!"


일면 맞는 말일수도 있으나  이 말은 본질을 포함하지 않는다. 9번은 사실 게으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부지런하다. 단지, 그 부지런함이 '성취에 대한 도피'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갑자기 독서에 열중한다거나.. 그런 식이다. 마음이 도피에서 발현된다는 것이 핵심이고 게으름은 그 현상일 뿐이다. 모습을 바꿔봤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단순히  통합방향에 있는 유형을 따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머릿속에서 에니어그램 지도를 완전히 지울 필요가 있다. 사실 통합을 위해서는 에니어그램 자체도 필요 없다. 나도 그냥 재밌어서 가지고 놀았을 뿐이지 개인적 경험으로 에니어그램은 통합 자체를 위해서는 그렇게 좋은 도구가 아니었다. 유형론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유형안에 자신을 가두기 때문에, 처음  하나의 고착을 깨달을 때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관찰하는데 오히려 해가된다.


그러니 일단 에니어그램 지도를 머릿속에서 지우자. 통합 방향과 비통합 방향도 전혀 알 필요없다. 우리는 유형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고착이 있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만 알면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고착이 있는 존재. 유형은 없다."


그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우리는 모두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 괴로움의 뿌리를 잘 들여다보고 그것을 알아차려라. 명심할 것은, 괴로움의 뿌리는 타인에게 있지 않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남을 나의 분별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게 괴로움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별심이 고착이다. 그저 끊임없이 알아차리고, 괴로움이 일어나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생각하자


"내가 또 고집을 부리고 있구나."


둘째,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닦아라.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아도 그때뿐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다. 오랜 습관이 타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


습관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훈련을 해라. 매일아침 늦잠 자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부터 고치면 된다. 너무 쉽게 화를 낸다면 화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을 들여라. 단,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타성이라는 것은 너무 강력해서 한 번에 고쳐지지 않는다. 한 번에 하나씩만 고치고, 조금 거기에 익숙해질 때 하나씩 늘려가면 된다.


매일같이 자신을 닦아나가며 타성과 싸우다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고착을 발견할 수 있다. 타성 또한 고착이다. 나의 어떤 어리석은 생각이 고착을 단단하게 만들어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매일같이 닦아나가야 한다. 적어도 3년 동안 꾸준히 하는 걸 목표로 하자.




에니어그램은 우리 마음에 대한 매우 단순한 지도에 불과하다.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고착이 얼기설기 엮여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들여다볼 줄 안다면 다른 도구는 필요없다. 그냥 직접 보면 된다.


유형을 들여다보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꾸준히 닦아나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지혜로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