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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Oct 15. 2020

그때 난 무슨 글이 쓰고 싶었을까?

첫 포스트, 4년 후

종종 잊을만하면 2016년 2월에 여기에 쓴 첫 글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다시 읽어보니 맨 마지막 문장 빼고는 그다지 오글거리지 않는 걸 보니 꽤 진실에 기반한 글이었나 보다. 그 글을 쓸 때는 아마도 내가 뉴욕에 패션계에 계속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쓴 것 같다. 매일 보는 화려함을 우려먹으려는 속셈이 아니었나 싶다.


4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은 뉴욕을 떠나 포틀랜드로 이주했고, 아줌마 플러스 애엄마가 되었고, 다행히 아직도 텍스타일 디자이너이지만 패션에서 신발로 옮겨가게 되었다. 코로나를 겪고 있고 산불 때문에 포틀랜드도 떠나 펜실베이니아 엄마 집에 피난 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코로나, 산불, 역대급 미국 대선, BLM, 레이오프 소식 등등 이일 저일 겪으며 한 해를 보내니 죽음과 상실이 곧곧에 도사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구나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이 시기에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는데 꽤나 단순한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이런 죄다 돈이 안 되는 것들 뿐이었다. 그동안 이 사업 저 사업 생각해 보며 머리를 굴렸건만 꽤나 순수한 취미가 있었다니! 나 자신도 놀랍다. 아이가 태어나고 ( 벌써 곧 있으면 3살) 더 줄어든 내 개인의 시간에 이왕이면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지만 세계가 함께 겪는 코로나 시대에 공교롭게도 내가 다시 찾은 사랑은 글이다.


어제 11년 전에 선물 받은 책을 꺼내 들었다. 박완서 작가의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다시 책머리에 이런 글이 있었다.


    ' 이 책을 처음 내면서 쓴 서문을 다시 읽어 보니 말미에 " 나는 지금 지쳐있고 위안이 필요하다."라고 쓰고 있다. 진이 다 빠지고 빈 꺼풀만 남은 것처럼 허탈해지는 건 소설을 끝내고 나서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가여서 으레 그러려니 해 왔건만, 이 소설에서 그걸 특별히 강조한 건 아마 순전히 기억에 의지한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환기시키기란 덮어 둔 상처를 이르집는 것과 같아서 힘들고 자신이 역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 일에서 놓여나면서까지 위안을 구했었는데, 다행히 지난 10년이란 오랫동안을 꾸준히 독자와 만나는 행운을 누렸으니 그만하면 충분히 위안을 받은 셈이다.'


진이 다 빠지고 빈 꺼풀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지 꽤 됐고, 소통 없이 계속 생산만 해야 하는 디자이너, 주기만 하는 애엄마, 더 이상 역할이 뭔지도 모르겠는 한 사람의 와이프로서 겨우 하루를 마무리하며, 결국 위안이란 게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거라면 어떻게라던 내 것을 조금은 보여 줘야 하고, 사람들을 초대해야 하고, 소통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예전엔 나를 드러내지 않고 주변 것들만 건드리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면 이젠 내가 들어가 있지 않으면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걸 배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4년 전보다 진솔해질 수 있을 것 같다지만... 꾸준히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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