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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Aug 04. 2021

영화 리뷰 <잘리카투>

'가부장 사회' 균열낸 소 한 마리, 뒤를 쫓던 남자들...


인도 남부의 한 마을. 어느 날, 바르키(쳄반 비노드 조제 분)가 운영하는 푸줏간에서 마을의 부자 쿠리아찬(재퍼 이두키 분)의 딸 약혼식 피로연용으로 도축하려던 물소 한 마리가 탈출하는 사건이 터진다. 물소가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건물과 농작물을 파괴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마을 남자들은 바르키와 그의 조수 안토니(안토니 바르게즈 분)를 중심으로 사냥에 나선다.


기대와 달리 물소를 잡기는커녕 상황만 나빠지자 사람들은 바르키의 전 조수로 교회 땅에서 백단향을 훔친 일 때문에 밀수업자로 낙인찍힌 채 마을에서 추방되었던 쿠타찬(사부몬 압두사마드 분)을 부른다. 안토니와 쿠타찬은 경쟁하듯 물소 사냥을 벌이고 뒤따르는 남자들의 무리도 점점 커지면서 마을 전체가 집단적인 광기에 빠져들게 된다.


'잘리카투'는 수 세기 전부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서 매년 1월 추수 감사축제 '퐁갈' 기간에 열리는 전통의 스포츠 시합이다. 승부는 황소를 풀어놓고 참가자들이 등에 올라타서 가장 오래 버티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 방식으로 가린다. 2014년 인도의 대법원은 동물보호단체의 청원을 받아들여 '잘리카투'를 중단시켰다 2017년 타밀나두 주 의회가 주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서 진행하는 잘리카투는 동물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동물학대방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시금 허용됐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인도를 대표하여 출품된 영화 <잘리카투>는 '잘리카투'를 제목으로 붙였으나 스포츠 시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간의 손아귀를 벗어난 물소가 미친 듯이 달리고 여러 남성이 물소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강한 남성성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점 정도가 유사할 따름이다. 영화는 S 하리쉬가 쓴 단편 소설 <마오주의자>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연출을 맡은 리조 조세 필리세리 감독은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작 <마오주의자>는 내면 깊은 속에 스릴러를 숨기고 있는 풍자 소설이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탐구하고자 했다. 남은 것은 여러분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그것이 스릴러의 탈을 쓴 풍자인지 풍자의 탈을 쓴 스릴러인지 여러분이 판단해 주기 바란다."



<잘리카투>는 마을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불을 켜고 일상생활을 하는 광경을 경쾌한 사운드와 빠른 편집으로 구성한 10여 분가량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엔 푸줏간에서 고기를 팔거나 경찰로 근무하는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 도축 행위와 구타 행위는 몽타주 효과를 통해 하나로 합쳐지며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상적인 폭력이란 의미를 얻는다. 푸줏간을 탈출한 물소는 남성들이 폭력성으로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균열을 가한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잘리카투 시합처럼 남성들은 위협 요소의 길들이기에 나선다.


탈출한 물소는 남성의 욕망을 폭발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마을의 남성들은 복수심, 탐욕, 경쟁 등 각기 다른 목적으로 물소를 뒤쫓다가 점차 원초적인 광기에 빠져든다. 영화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공동체를 진짜 위협하는 원인은 물소가 아닌 남성들의 광기로 변한다. 하나의 사냥감을 놓고서 서로 다투며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전락하는 이들의 모습엔 인류 역사에 무수히 기록된 조직, 사회, 민족, 종교, 국가의 광기 어린 폭력이 투영되어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솟구치는 야만성 앞에서 문명이란 이름의 시스템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도리어 폭력을 부추기거나 방관할 뿐이다.


리조 조세 필리세리 감독은 <잘리카투>가 "지금 세상의 광기 어린 질주에 대한 우화"라고 이야기한다. <잘리카투>의 시작 장면과 끝 장면엔 요한계시록 구절이 나온다. 처음엔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을 넣었다. 그런데 마지막엔 그보다 앞선 내용인 요한계시록 19장 17~18절을 보여준다. 순서를 거슬러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성경의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군중으로 겹겹이 쌓은 무시무시한 탑이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처럼 인류가 탐욕으로 무너져선 안 된다는 감독의 마음을 요한계시록의 역순 배치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인류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 믿는다.


"<잘리카투>는 이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모든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영화를 성경의 요한계시록과 좀 더 연관 짓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혼돈의 정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광명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여행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접한 인도 영화와 다른 <잘리카투>는 다양한 영화적 경험을 안겨준다. <버라이어티>의 제시카 키앵은 "극도의 흥분으로 소용돌이치는 사회 이슈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영화가 던진 "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란 질문에 주목한 것이다.


<더 타임즈 오브 인디아>의 디파 안토니는 "<잘리카투>를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시각적 체험"이라고 적었다. 역동적인 추격 시퀀스도 근사하거니와 천여 명의 인원을 실제로 동원한 클라이맥스 장면이 실로 장관이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야수성을 소리로 표현한 듯한 사운드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TV나 컴퓨터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극장만이 가능한 시청각적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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