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총격전과 강도질이 난무하는 공간 '프리 시티'. 평범한 은행원 가이(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매일 아침 파란색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커피숍에 들러 크림 하나, 설탕 둘이 들어간 커피 한 잔을 사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출근한다. 퇴근 후엔 친구 버디(릴렐 호워리 분)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선글라스'를 낀 몰로토프걸(조디 코머 분)에게 한눈에 반한 가이는 어떻게든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은행을 터는 강도로부터 '선글라스'를 빼앗는다. 정해진 사람만이 선글라스를 낄 수 있다는 프리 시티의 규칙을 깬 가이는 감춰져 있던 도시의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영화가 게임을 소재로써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게임을 실사로 옮긴 <레지던트 이블>, 게임 세계에 현실의 인물이 들어가는 <쥬만지> 시리즈, 게임 캐릭터가 자신이 속한 게임 세계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주먹왕 랄프> 시리즈, 게임 세계와 게임을 하는 인물들이 있는 현실 세계를 나란히 조명한 <레디 플레이어 원>(2018)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프리 가이>는 자신이 게임 속 배경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가이가 파괴될 운명에 처한 프리 시티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내용을 다룬다. 각본은 <크리스마스 연대기>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아담스 패밀리>(2019)를 쓴 맷 리버맨과 <인크레더블 헐크>(2008), <어벤져스>(2012), <레디 플레이어 원>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자크 펜이 작업했다. <프리 가이> 시나리오는 2016년 블랙리스트(해당 연도에 발표했으나 영화화되지 않은 각본 가운데 제작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은 목록)에 오를 정도였으니 영화화는 시간 문제였다.
메가폰은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2003), <핑크 팬더>(2006), <브로큰 데이트>(2010), <리얼 스틸>(2011) 등을 연출한 숀 레비 감독이 잡았다. 그는 "자신이 살벌한 오픈 월드 게임 속의 배경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은행 창구직원이 주인공이고 게임 속 배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프리 가이>에서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닌, 배경 캐릭터에 불과하던 가이는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스스로 한계를 넘어선다. 마치 인간의 자유의지를 탐구한 <트루먼 쇼>(1998)를 게임으로 재해석한 느낌이다. 숀 레비 감독은 영화의 주제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지 말고 자신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라 설명한다.
가이 역을 맡은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스토리텔링이 그리웠던 차에 <프리 가이> 시나리오를 만났다"며 "캐릭터의 여정이 명료하고 정확한 시나리오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프리 가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각본에 애정을 드러낸다.
<프리 가이>는 더불어 사는 것을 강조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게임 속 세상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답게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를 동시에 조명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게임 세계의 캐릭터들, 그리고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은 영웅으로 발돋움하는 가이가 일으킨 영향으로 말미암아 점차 하나로 뭉치게 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과 비슷한 듯 다른 전개다.
또한, 분리된 줄만 알았던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는 공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숀 레비 감독은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의 단결과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기쁨에 대한 영화이기도 해서 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영화가 보여준 서로 간의 '연결'과 '연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와닿는다.
<프리 가이>는 게임을 배경으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 문화와 산업에 대한 논평을 낸다. 영화 속 게임 '프리 시티'는 현실의 인기 게임인 'Grand Theft Auto'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폭력성으로 가득한 오픈 월드 형식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마구잡이로 NPC(Non-Player Character,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로 한 자리 또는 한 지역에 머물며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다)를 죽이는 인간과 달리 누구도 해치지 않는 인공지능 가이를 통해 게임과 게이머의 윤리 의식을 되돌아본다.
인기 게임 '프리 시티'를 출시한 '수나미'의 수장 앤트완(타이카 와이티티 분)에겐 게임 기획과 개발을 둘러싼 대형 게임 제작사의 인식과 만행이 반영되어 있다. <프리 가이>가 묘사한 게임 산업의 모습은 온도차가 있을지언정 현실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프리 가이>는 까메오와 게임 활용이 돋보인다. 휴 잭맨, 드웨인 존슨, 존 크래신스키, 티나 페이, 채닝 테이텀 등 할리우드 A급 배우들이 '프리 시티'의 게임 캐릭터로 등장하거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한 멤버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 등장하여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록맨> <포탈> <헤일로> 등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게임들의 주요한 특성을 영화 곳곳에 숨겨놔 찾는 재미를 더한다.
후반부에 삽입된 '마블'과 '스타워즈' 콘텐츠 사용은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가 말하고자 바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프리 시티'를 만든 키스(조 키어리 분)는 속편 등 프랜차이즈가 아닌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주장에 맞추어 <프리 가이>는 다른 영화를 패러디하거나 요소를 가져오질 않는다.
그런데 디즈니는 20세기 폭스가 합병 이전부터 제작 중이던 <프리 가이>에 합병 후 기어코 자사 IP(지적 재산권)를 마지막 장면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디즈니는 속편과 IP 남발로 가득한 할리우드 여름 시장에 드물게 나온, 게임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근사한 오리지널 블록버스터에 옥에 티를 남기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