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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Aug 11. 2021

영화 리뷰 <아무도 없었다>

모닥불 피우고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자 벌어진 일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조슈아트리 근방에 지내는 형 페이튼(쿠퍼 로우 분)을 만나러 간 에반(아이작 제이 분). 둘은 함께 사막을 여행하면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지만, 에반은 우연히 만난 조(애슐리 모건 분)에게 끌린다. 형과 여행 대신에 조의 일행이 머무는 한적한 별장으로 간 에반은 카밀(베빈 브루 분), 샘(마이클 허먼 분) 등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신나게 파티를 즐긴다.


그날 밤, 모닥불 주위에 모인 일행은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차례가 된 에반은 인터넷의 '익명의 악몽' 사이트에서 고른 다섯 번 이름을 부르면 소환되는 초자연적인 존재 '히스지 괴담'을 들려준다. 그리고 일행 주위엔 이상한 일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열 개의 인디언 인형>(미국 출판명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은 최고의 추리 소설로 추앙받는 작품이다. 소설이 보여준 고립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정체 모를 범인에 의해 하나씩 살해당하는 설정은 이후 숱한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존 카펜터가 크리스찬 나비의 <괴물 디 오리지널>(1951)과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었던 < WHo goes there? >를 참고하여 만든 영화 <괴물>(1982)도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아무도 없었다>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모티브로 삼은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이 가졌던 고립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면서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포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감은 가져오되 이야기의 얼개는 완전히 바꾸었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 속 수수께끼의 범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캔디맨을 다섯 번 말하면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내용을 다룬 <캔디맨>(1992)을 연상케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현실로 소환된 히스지가 사람들의 신체를 강탈하거나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하는 전개에선 <외계의 침입자>(1956), <괴물>의 영향이 엿보인다. 현대의 악령 괴담이란 틀로 본다면 <블레어 위치>(1999)도 떠오른다.


"복수심에 불타는 악령 히스지. 그 이름을 절대 다섯 번 연호하지 마라. 창백한 피부와 녹색 눈을 가진 악령. 이미 당신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히스지 괴담을 설명하며 시작하는 <아무도 없었다>는 최근 공포물이 주로 사용하는 '깜짝쇼'가 아닌, 고전적이며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미 당신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를' 히스지를 묘사한다. 고전적인 방식을 꼽자면 어둠 속 너머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할로윈>(1978) 등 공포 영화의 오랜 전통이다. 


일상적인 방식을 찾는다면 누군가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같이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고 있었던 친구가 알고 보니 악령이었다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관객은 화면에서 일어나는 사건, 나오는 인물을 끊임없이 긴장하며 '다음은 누구일지(<아무도 없었다>의 원제는 머릿수를 뜻하는 'Head Count'이다)'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에반을 제외한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아무도 없었다>는 가면을 쓴 살인마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바바둑>(2014), <팔로우>(2015), <겟 아웃>(2017), <유전>(2018) 등 심리 공포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고어가 아닌, 분위기가 일품이다. 제한된 공간과 인물도 영리하게 활용한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게으르게 재해석한 작품들과 차원을 달리 한다.


<아무도 없었다>는 엘르 칼라한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이기도 하다. 엘르 칼라한 감독은 낯선 이름이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앤트맨>(2015)의 특수효과, <크람푸스>(2015), <원더우먼>(2017)의 편집에 참여하는 등 할리우드에선 이미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녀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바탕으로 현대 괴담, 슬래셔, 도플갱어, 신체강탈, 편집증 등 다양한 공포 요소를 저예산의 한계에서도 멋지게 혼합했다. 실로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작품인 <위치 헌트>(2020)를 빨리 보고 싶다. LA필름 페스티벌 나이트폴어워드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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