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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Jan 31. 2018

산과 같은 바다가 그곳에 있다.

겨울목포여행기

 으레 남자들이 그렇듯 계획은 가벼운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의미 없이 한숨을 쉬었고, 생각 없이 제안을 하였다. 남자 셋의 목포 여행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지에 대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리 셋 중 누군가가 말한 첫 번째 장소였는데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여행의 뜻을 풀어쓴다면 '어디어디를 가다.'가 아닌 '누구누구와 가다.'일지도 모른다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우리는 다섯시간도 넘게 걸려 목포에 도착했지만, 마악 도착한 그 순간보다는 이동하는 내내 차 안의 실없는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마악 도착한 그 순간

 밤늦은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목포의 바람이 서울보다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목포는 항구다.'라는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목포의 특징을 잘 표현한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바로 옆에 항구가 있음에도, 목포는 이상할 정도로 바다의 분위기가 돌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이곳의 바다는 산과 같다. 흔한 파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존재감이 없다. 항구 근처에서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간혹 우리가 바다를 바라보며 동경하는 동안, 산은 우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목포의 바다는 정반대였다. 뻥 뚫려 오가는 물길의 역할이 아닌, 도시를 고립무원으로 만들어버리는 수벽과 같았다. 목포의 바다는 즐기고 바라보는 곳이 아닌 이용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방인에게 가장 뚜렷한 목포의 이색은 산과 같은 바다이다.

목포의 이색은 산과 같은 바다이다.(aka.울돌목)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목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유달산을 오르고 목포대교를 건넜으며, 세월호와 진도를 바라보곤 돌아와 저녁으로 홍어 한 상을 받았다. 사실 서두에 말했듯 나에게 여행 장소가 주는 인상은 그리 크지 않다. 여행을 많이 해 본 편은 아니지만, 지난 여행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온통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날의 여행에서는 장소와 장소가 이어지는 흐름이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사유는 세월호에서 시작되었다. 목포대교를 절반쯤 건너면 저 멀리 널찍한 공터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세월호의 녹슨 선체를 볼 수 있다. 너른 평지에 글자 그대로 누워있다. 꽤 멀리서부터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무너진 철탑 같기도 생포된 고래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고발하고 반성하게 만든 그 배는 지금 외딴곳에 홀로 누워있다.

무너진 철탑 같기도, 생포된 고래 같기도 하다.

 홍어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그날의 저녁상에서 나는 홍어를 처음 접해보았는데, 한 두점 먹어서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맛이었다. 보통 삭혀서 회로 먹거나 애를 탕으로 끓여 먹는 홍어는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닌 '체험'함으로써 느끼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닌 고통의 일종이기에, 매운맛을 즐기는 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 상황에 더 매료되는 것처럼, 홍어의 맛을 아는 사람들도 그러겄거니. 엽떡 매니아로서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오늘 이 홍어 한 점이 내 인생 마지막 한 점이 되리라는 확신만은 더 단단해졌던 저녁 한 상이었다.

홍어보다 훨씬 맛있었던 세상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순대국(유시민 보증)

 저녁 전 김대중 기념관에도 잠시 들렀는데, 퍽 인상적인 곳이었다. 김대중 콘텐츠는 그가 마주했던 일련의 상황들이 가진 드라마가 매력적이다. 기념관을 관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한 개인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는 개인이 가진 개연성과 개연성에서 기인한 확률 내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파격은 확률상 무난한 경로를 벗어났을 때 발생한다. 성공한 20대의 목포 출신 사업가가 나아간 방향과 거리는 무난한 경로에 한참이나 벗어나 파격과 파격을 반복했고, 마침내 드라마틱해졌다. 인간 김대중이 인상적인 이유는 대쪽같은 그의 철학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파격속에서 드라마틱해진 그의 인생 경로에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은 파격이 어울리는 남자이다.

서생적 문제의식, 상인적 현실감각. / 김대중(1924~2009)

 장소보다 동행이 더 중요한 나에게도 유난히 정치적이고 축축한 겨울목포는 어려운 곳이었다. 여느 여행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의 콘텐츠를 담뿍 향유했지만, 왠지 마냥 마음 편히 즐길 수 만은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목포의 콘텐츠는 여행자에게 웃음기 없이 집중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마력이 있다. 우연히 목포 출신의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목포의 바다는 산과 같아 매력적이었다고.'

목포여행(180126-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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