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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Aug 23. 2018

영화 서치 (Searching, 2017)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스포 주의]


서치 (Searching, 2017)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듯, 영화 서치(Searching, 2017)의 가장 표면적인 특징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현재를 완벽하게 담은 기록 다큐와 같다는 점이다. SNS와 개인방송, 그리고 다양한 웹 서비스를 호환이 완벽에 가까운 애플의 N스크린을 통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 지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개인 간의 메시지, 익명성에 숨어 개인 방송 등의 웹 서비스를 소비하는 개인의 적나라한 채팅, 그리고 개인정보를 거머쥔 거대 기업이 한 소비자에게 어떻게 구매를 부추기는지까지. 이 영화에 담겨있는 온라인 소통에 관한 디테일들은 헛웃음과 쓴웃음을 동시에 짓게 만드는 극중 최고의 씬 스틸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통이 중요하다.' 시대와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을 희대의 잠언이다. 짧지 않은 인간사를 관통하는 그 문장은, 애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동안 소통의 주요 수단이 마우스(Mouth)에서 마우스&키보드(Mouse&Keyboard)로 바뀌어 그 조작법과 난이도가 급상승해버린, 다시 말해 기술의 진보로 인해 그 실천은 더욱 어려워져 버린 안타까운 행동지침이기도 하다. 소통의 기술은 진보했는데 소통 그 자체가 더 어려워졌다니. 이 무슨 주인과 손님이 바뀌어버린 이야기란 말인가?

서치 (Searching, 2017)

 기술의 진보로 인해 소통이 더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주인공 데이빗과 마고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같은 상처를 가진 그들은 선뜻 데이빗의 아내이자 마고의 엄마였던 파멜라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데이빗은 'Mom would be too.'라는 지금 마고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을 썼다 지우길 반복하지만 결국 전송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의사소통의 매개로써 키보드가 지닌 약점이 드러난다. 언제나 키보드는 다시금 '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메시지일수록 키보드는 전송 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발화자를 주저케 하고 결국 용기를 주워 담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말은 즉흥적이며 주워 담을 수 없다. 때로는 의사소통에 서툰 이들에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언행은 평소에는 낼 수 없었던 용기를 더해 문제를 해결시켜주는 마법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빅의 아들 로버트와 마고 사이에서도 온라인 소통의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조금 더 심각한 문제인데, 바로 비대면성에 의한 사칭과 거짓에 관한 것이다. 로버트는 마고의 개인방송에서 Fish_& Chips라는 아이디를 쓰는 20살 웨이트리스 인척 하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사실 로버트는 마고와 같은 학교를 다니며 그녀를 마음에 둔 남학생이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타인 인척 마고에게 대화를 거는 것이 할 수 있는 소통의 전부였다. 마음먹고 속이려 들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온라인 상의 개인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며 행여 믿었다가는 위와 같은 사건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로버트의 거짓은 마고 실종 사건의 시발점이 되어버렸고, 옳지 못한 커뮤니케이션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 중 하나로 마무리된다.

서치 (Searching, 2017)

 이렇게나 어려워진 디지털 환경의 의사소통 속에서, 그럼에도 소통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마고 사건 담당자 빅과 데이빗의 통화 속에서 마고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데이빗을 달래는 빅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물론 빅이라는 인물의 특성상 다른 꿍꿍이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실종사건 전담 경찰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 개인, 특히나 소중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개인과 개인은 섬이 아니라지만 완벽한 이해란 없으니 오해는 언제든 생기는 게 정상이다. 다만 그러한 오해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과정과 노력이 개인과 개인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열쇠인 것이다.

영화 슈퍼 에이트 (Super 8, 2011)의 어린 꼬마가 외계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듯 '나쁜 일은 생기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이후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사건 발생 전, 스크린 속 데이빗과 마고와의 소통은 오로지 디지털 기기로만 이루어진다. 반면 마고와 그의 삼촌 피터와의 대화는 다행히(?) 마리화나라는 액티비티(??) 덕에 면대면으로 이루어지고, 마고는 데이빗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슬픔과 들을 수 없었던 위로를 피터와 주고받는다. 이 대조적인 두 장면이 어쩌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서치(Searching, 2017)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결말부에 나타나는 커다란 반전이다. 웹 정보의 꼬리의 꼬리를 무는 추리 속에서 이야기는 전개되고 마침내 반전 가득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반전의 기준은 얼마나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냐가 아닌, 얼마나 예상치 못하게 메시지를 강조해주느냐 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반전은 매우 바람직하다! 데이빗이 마치 전문 프로파일러만큼이나 멋진 추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준 강력한 동기가 범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해 철두철미한 범행을 만들어낸 동력이 됐으리라.


 웬만한 영화가 다 재미있는 필자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진심으로 재밌고 잘 만든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독특한 촬영 기법에 담긴 디테일과 참신함부터, 공감으로 인해 완성되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매력, 한 발짝씩 전진할 수 있게끔 해주는 데이빗의 추리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반전까지. 길지 않은 러닝타임 더욱더 짧게만 느껴진 영화 서치(Searching, 2017)이다.


P.S 원제는 Searching인데 굳이 서치로 번역한 이유는 뭘까?

서치 (Search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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