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to LA 미국 NBA 투어 1
[하루 45km, 200일 간 배송된 나의 NBA]
약 200일 전, NBA여행을 계획했다. 당시에는 아직 한참 멀어서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0일
후의 NBA 경기들을 덜컥 예약해버렸다. 예약을 하고 출발 일주일 전 까지도 나는 당연히 이 여행을 못 갈 어떤 이유가 생길 줄 알았다. 먼 일정의, 머나먼 여행 지니까. 먼지 가득하고, 머엉한 일상에 과연 그날이 올 지. 작년에 계획했던 토론토 여행처럼 그렇게 취소되지는 않을까. 회사에, 집안에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나의 예감을 예지로 만들어 줄 뻔도 했지만, 결국 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리던 그 택배가 도착하듯 나의 NBA 투어도 나에게 도착하였다. 한국과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는 약 9095km. 절대 지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0일 동안 하루 45km씩 조금씩 나에게 배송된 것이다. 마침내 19년 2월 28일 나는 첫 번째 여행지인 미국 이스트베이의 대장,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냄새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자 가장 마지막까지 들었던 생각이며 동행한 고향 친구에게 수시로 했던 질문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나서자마자 뭔가 음흉하고 째릿한 냄새가 도처에서 풍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지난 18년 1월 1일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합법화된 마리화나, 속칭 Weeds 태우는 냄새이다. 거래가 합법화됐을 뿐 아직까지 공개장소와 차 안에서 태우는 것은 금지이지만, 여기저기에서 Weeds를 태우고 있는 미국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담배냄새조차 극혐 하는 나에게 샌프란시스코와의 첫 만남은, 고3 시절 당장이라도 페브리즈를 퍼붓고 싶었던 진성 골초이자 믹스커피 중독자인 한국지리 선생을 만난 날과 같았다. 배 모 선생님 잘 계신가요? 이렇게 10년 만에 뵙네요. 저는 수능 한국지리가 4 등급 나왔지 뭐예요 하핫.
[어딘가 익숙한 East bay]
미국 서부의 East Bay는 크게 3개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격이자 가장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와 가장 과격하고 힙한 오클랜드, 가장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알라미다 지역이 바로 그곳들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영화 등에서 많이 등장한 대표적인 비즈니스 항구도시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기업들이 모여있는 동시에, 건물 고도제한과 고건물 보존 정책 등 도시 미관 관리에 철저한 이 도시는 마치 부산의 수십 단계 진화형과 같은 규모와 스웩을 느끼게 해 주었다. 부산이 이렇게만 성장한다면 소원이 없겠달까? 마, 이것이 천조국 스웩이다 이기야
반면 오클랜드는 천조국에서도 밤길이 위험하기로 손꼽히는 공포스러운 도시이다 유난히 Weeds 냄새가 풍기고, 유난히 KFC 텐더가 딱딱했던 그곳. 한 때 마산 일대를 주름잡던 강호동 형님과 닮은 거구의 흑형을 잠시 만났던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알라미다는 여행 전에는 나에게 그저 조용하고 특색 없는 섬 지역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나의 고향 친구와 이번 여행으로 인해 제2의 고향급(?)의 미주지역이 되었다.
사연인즉슨, 고향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친구가 소속된 대외협력팀에서 우리 고향과 알라미다 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협업을 했던 알라미다 지역의 한인 분들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해주신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숙소와 음식과 극진한 보살핌(?)을 주셨다. 나는 정말 꼽사리 of 꼽사리 of 꼽사리로 끼어 이 대접을 받아 매우 감사하면서도, 그들이 우리 고향을 방문했을 당시 친구가 했던 일처리와 대접이 너무도 마음에 들고 고마웠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올ㅋ
[NBA의 명물 매운맛 커리]
여행 둘째 날, 오늘의 NBA 붐을 이끈 장본인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르브론 제임스를 좋아하기에(소위 릅퀴ㅠ) 커리를 칭찬하고 싶지 않지만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나는 르브론의 광팬이고 친구는 커리의 광팬이다.(소위 골건적ㅋ) 이번 여행이 자연스레 미국 서부 여행이 되어버린 이유이다.
19년 2월 23일 토요일, 우리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vs 휴스턴 로켓츠 경기를 보러 워리어스의 홈 오라클 아레나에 갔다.
이 문장에 나에게 얼마나 크게 밀려오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마치 이 여행 한 달을 앞두고 전해져 온 한 달짜리 세무조사의 막막함 정도랄까? 너무 좋아하는 그들의 경기를 내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밖에 할 수가 없다. 그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던 휴스턴의 털보 대장 하든이 부상으로 결장하고, 순한 맛 커리 모드로 홈팀인 골스가 패배하는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에 상관없이 너무너무 좋았던 하루였다. NBA든 KBO든 프라모델이든 레고든, 어떠한 취미생활이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담뿍 느낄 수 있었다. 굳이 Weeds는 왜 하냐 멍청이들아?!! ㅋㅋㅋㅋ
[성공한 한인 형님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내내 융숭한 대접을 해주신, 형님이라 하기엔 나이와 경험 차이가 어마어마하신 알라미다의 한인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미 부동산업으로, 요식업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신 비즈니스의 대가 들이었다. 우리를 공항에서 픽업해주신 김 사장님은 우리를 이스트베이의 바다가 뒤뜰에 펼쳐진 본인의 2층 집으로 초대해 포르쉐 2대와 할리 2대와 총 30정과 골스 직관 기념 티셔츠 수십 장을 해맑게 자랑하시는 스웩을 보여주셨다. 또 이튿날 오전 우리에게 프라이빗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 정통 아메리칸 블랙퍼스트가 뭔지 톡톡히 보여주신 조 회장님의 빌리어네어 스웩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샐러리맨인 나에게는 아찔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친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진심 어린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세계 3대 와이너리인 나파밸리 투어를 해주시고, 세계 20위권 대학인 U.C. 버클리 캠퍼스를 보여주시며, 우리가 무엇 하나라도 배워갔으면 하는 진심을 느끼게 해 주셨다. 삐뚤어진 나는 처음엔 삐뚤어지게 생각했지만 이내 그들의 정성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먼 타지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 성공을 만끽하며 더 큰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그 성공의 노하우를 타인들과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다.
길게 생각해봤지만 그뿐인 것 같다. 타국 땅에 아무것도 없이 발을 디딘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성공을 일구고 그 열매를 나누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리스펙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이 나눔에 조금이라도 득을 본 나와 내 친구 역시 성공과 나눔에 대한 동력과 의무를 동시에 가지게 된 기분이 들었다.
[길 한복판에서 늘 무언가를 하고 있는 그들]
셋째 날 예정되어 있었던 요세미티 국립공원 투어가 어이없게도 전날 모객이 충분히 안되어 취소되어버렸다.(이 사실을 전날, 그것도 내가 먼저 픽업장소를 전달하다 알게 됐다... 행여나 누군가 줌줌투어에서 알아보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첫날과 둘째 날 빽빽한 일정을 소화한 우리는 일단 아침 11시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아마 시차에 완벽하게 적응한 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갓벽한 컨디션으로 1시쯤 나선 우리는 바트(캘리포니아에서는 지하철을 바트라고 한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바트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우리 숙소가 오클랜드에 있어 바트를 타는 것이 살짝 부담되긴 했다.(워낙 우범지대이고 약에 취한 흑형이 많아서...) 그러나 경험해보고 싶어 타기로 했고, 친절한 백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원하는 구간의 바트를 무사히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흔히 미국 서부여행을 간다고 이야기하면, 샌프란시스코 역시 치안이 안전하지 않으며 늦은 시간까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낀 샌프란시스코는 늦은 시간까지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비록 일요일이라 저녁 7시 이후 상가가 모조리 문을 닫아버렸지만) 우리는 다운타운 중심과 골든게이트 근처 피셔맨스와프 주위를 배회하며 여행 3일 만에 비로소 타지의 이방인이 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후 내내 깜깜해질 때까지 우리는 쇼핑을 하고 크랩 차우더를 흡입하며, 금문교 인근을 걸었다. 다운타운에 아마존고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가보고 싶은 나머지 굳이 다시 다운타운을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문을 닫아버려 방문하지 못한 게 매우 아쉬웠다.
바트 안에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배회하면서 유독 길 한복판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길 한복판에서 가방정리를 하고 수다를 떨며, 길 한복판에서 Weeds를 태운다. 마치 길이든 뭐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라는 말풍선이 그들의 머리 위에 달린 듯하다. 예전에 보았던 EBS의 ‘동과 서’라는 다큐가 떠올랐다.
‘한 장소에 있던 풍선이 갑자기 날아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동양인은 ‘바람이 불어서’라고 대답하고 서양인은 ‘바람이 빠져서’라고 대답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개별 사건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동양인과 내부에서 찾는 서양인의 경향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길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그들을 보며 서양인처럼 생각하는 게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듯했다.
이스트베이의 샌프란시스코! 좋은 여행지였다. NBA를 보기 위해 이곳엘 왔지만 NBA 못지않은 많은 콘텐츠를 만나고 갈 수 있어 배가 너무 부른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생각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런 여행감상문 같은 글을 LA로 떠나기 전날 밤 3시간째 쓰고 있는 이 상황도 즐거울 따름이다. 이제 LA로 향한다. 그곳엔 르브론이 있고, 르브론이 있고, 르브론이 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