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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ca Apr 24. 2017

십자가와 초승달이 함께 사는 동네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도시, 하라르


어떤 것이든, 종교를 갖는 것은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매번 찝찝한데, 종교를 '갖는다'는 표현은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큰 이견은 없다. 신앙으로써 끊임없이 정신을 가다듬고 나아가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은 개개인에게도 이로운 일이며 신성한 행위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종교가 꼭 그런 이점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 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 신성성을 오남용 하는 일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주름도 눈살 한두 번 찌푸려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공연한 사실들이 한몫했다. 나에게 종교란 평화보다 분쟁이었고 화합보다 갈등에 가까운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종교라는 것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배척하라고 만든 철학은 아닐 것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했던 이야기를 몸소 납득할 계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경험은 상당히 뜻밖의 장소에서 일어났다.




에티오피아 동부에는 희한한 도시가 있다.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단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자니 도무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덕분에 차근차근 속내를 알아가는 맛은 있다.


'하라르(Harar)', 그저 맛 좋은 커피의 산지로만 알고 있었다. 우리네 커피전문점에는 하나같이 '하라'라고 써져있길래 당연히 그런 지역이 있겠거니 했다. 현지인들의 발음은 '하라르'에 가까웠다.


한국에서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라면 대표적으로 시다마를 포함한 남부지역의 커피를 떠올린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생각 외로 하라르의 커피를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동네 어귀의 시끌벅적한 시장거리를 지나면 조용한 동네 골목길이 이어진다. 보부상이 돌아다니고 염소가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돌아다닌다. 유명한 도시 치고는 볼거리도 없고 보는 이도 없다. 하지만 좋다.


천천히 걷다 보면 하나하나 개성들이 묻어난 골목길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답답함을 덜어준다. 미로 같은 길의 연속에서 느릿느릿한 삶과 세월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매력 있는 곳임을 느낀다. 좀 더운 것만 빼면..



물론 이곳의 가치에 대해서는 방문하기 전에 알아본 바가 있었다. 물론 방문하기 전에 다 까먹었다. 자기주도적 선행학습이 갑자기 한다고 될 리가 있나. 도착한 순간부터 나의 시선은 한없이 순수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평균의 가방끈을 보유한 청년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에 의하면, 80여 개의 모스크가 위치한 하라 주골(성벽, 성벽으로 이뤄진 요새)은 초기 이슬람 문화가 에티오피아의 문화와 오랜 시간 동안 접목되어왔으며 특히 그 건축양식은 아프리카와 이슬람 전통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단다.


설명을 곱씹어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하염없이 걸었다. 이토록 다르지만 어울리는 광경은 신선했다. 다름의 조화였다. 바로 이곳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보다 궁극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자체의 독특한 건축양식보다는 그 다름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반했다.



내가 느낀 조화는 시각적인 것들에서 기인하였지만 이야기는 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시가 만들어진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종교와 민족 간 분쟁을 겪은 적이 없다고. 신기할 따름이다. 도시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수많은 민족이 모여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할 절경도 없었고 몸 편안히 휴양할 만한 곳도 못됐다. 하지만 이방인임에도 이곳의 원주민들이 느끼는 조화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도시는 우리가 살면서 피아식별이 꼭 필요한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네 삶은 본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네의 연륜이 만들어낸 평화로움이었다.


종교가, 아니 다름이 어째서 분쟁의 대상이 되는지 묻는 것조차 무의미해지는 곳. 여유와 공존이 깊숙이 배어있는 곳. 그저 하룻밤의 방문객이지만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곳. 강렬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하라르는 그런 곳이었다.



사원을 지나 교회가 나타났다. 길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커피는 여전히 맛있었다. 사람들과 동물들은 여전히 한가로웠다. 하라르는 그렇게 내 생애 평화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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