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공과목을 강의한다. 나 같은 경우도 일반물리학이라든가 수리물리학, 유전체론 등 전공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은 과학사나 과학과 관련된 교양강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모대학에서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이라는 과목을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처음 이 과목을 맡았을 때 무슨 내용을 강의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강으로 몇 시간 강의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지만 3시간씩 15주를 강의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즉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 과학사 중심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과목명 이 과학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에 도서관에서 현대사회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과목이 지향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위기와 해결에 관한 것이다. 나는 현대문명의 위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3 가지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위기는 환경문제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은 인류를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환경 파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환경 파괴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여러 데이터를 봤을 때 인류의 생존 기간이 100 년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매우 무서운 결과이고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인류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서 고급 지식 전문가인 의사나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인격을 갖춘 로봇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가 온다면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인간과 거의 유사한 정신까지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영화 'A.I'처럼 인격을 갖춘 로봇을 잡아 파괴해야 할까? 아니면 만화영화 아톰처럼 친구로 받아들여야 할까? 분명 AI는 인간보다 월등한 면이 있다. 만일 그들과 경쟁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직장에서 명퇴를 당할 것이다.
세 번째 위기는 사회 불평등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노화방지, 인공장기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고 이 기술의 혜택을 누군가는 받게 될 것이다. 그때 누가 받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급 의료 서비스는 상당히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불노불사의 신이 될 수도 있다. 독재자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영원히 독재를 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빈부의 차이,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생물학적인 DNA의 차이는 없었다. 그래서 능력에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과학과 돈의 힘으로 생물학적인 서열이 발생하여 고착화 된다면 서민을 에게는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런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많은 어려움을 뚫고 현재에 이르렀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라 본다. 원시 시대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엄청난 집단의 힘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독재자가 나타나 그 엄청난 힘을 마구 사용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라는 개념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다음으로 빈부의 격차 문제가 심하게 발생하자 복지라는 개념으로 극복을 하고 있다. 이렇듯 위기와 기회마다 새로운 개념을 깨우치면서 인간은 현재에 와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개념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잘 극복할 것이라 믿어본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는 너무 두렵다
이 강의를 하면서 느낀점은 강의 주제가 상당히 넓었다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넘나들 수 밖에 없었다. 환경과 AI 문제 자체는 과학이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 역기능에 대해서는 사회적, 철학적 문제였다. 그래서 인문학을 따로 공부를 해야 했다. 어렵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시간강사는 강의를 하면서 하루하루 깨닫고 배우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깊이와 수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와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본다. 매일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면서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는 과정이 나쁘지만 않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