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까지 와서 공돌글이나 쓰고 있는가... #자아성찰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안 써진다.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잘 아는 것이 아니라는데, 아직 오를 산이 높아만 보인다.
머리 식힐 겸 난 왜 이 짓을 하는가, 일기나 써본다.
*두뇌 자체 필터링 기능이 멈춘 상태. 참고.
*논지가 없습니다
이제는 화석이다 못해 빅뱅이 되었지만, 나에게도 갓 대학에 입학해 나름 파릇파릇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졸업 전에는 꼭 해보고 싶다고 적어놓은 다섯 가지를 적었었다.
1. 글쓰기.
2. 다큐멘터리 찍기 / 사진 배우기
3. 비행기 조종 면장 취득하기
4. 마음 가는 대로 야외에서 악기 연주하기.
5. 고래랑 수영하기. (스쿠버 다이빙?)
딱 봐도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일들이다. 다큐를 찍기 위해서는 촬영술을 배워야 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능력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비행 면장? 자동차로 2차원 이동도 습득하지 못했는데 3차원 이동은 오죽할까. 악기 연주? 글쎄 그럴 만한 철판을 깔 수 있을까? 고래랑 수영하기. 좋아라 하는 고래지만 정작 배 타고 고래를 본 적은 없다.
분명 조금만 소홀해지면 놓칠 것이 뻔할 일들임에도 내 머릿속에 저 다섯 가지가 남아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내가 낭만적이라고 느낀 것들이다. 낭만의 뜻은 알고 이런 얘기 하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낭만이란 생각했을 때 설레는 일들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낭만적이었다.
저 중 첫 번째였던 글쓰기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일이다. 사실 그대로 표현되고, 논리적 사고만 하며 읽을 수 있는 비문학 글이 편했고, 마침 과학 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과학적인 글을 썼었다. 물론, 비행기와 관련된 과학 글들이었고, 가끔 머릿속에 정리된 생각이 터져 나올 때, 수필 정도로 분류될 법한 글을 썼다.
하지만, 저 다섯 가지에 적혀있는 1. 글쓰기. 는 그런 글쓰기가 아니다. 단단하고 철두철미하고 이해되어야 하는 글보다는, 잘 찍은 사진 같은 글을 써보고 싶었다. 글이 논리적인 것을 떠나서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일지,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있긴 한 것일지, 궁금했다. 내면의 의식의 흐름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두근거렸고, 왠지 한 번에 이뤄질 것 같지 않다는 직감이 오히려 낭만적이게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루고 싶은데 그러기 힘든 것일수록, 그것을 이루었을 때 오는 감정은 더 폭발적이니까.
무쪼록, 글쓰기는 내 메모장에, 내 블로그에, 그리고 내 브런치에서 천천히 시작했다. 요리 글도 올리고, 수필도 써보고, 여행을 기록하기도 하며 전과는 다른 글들을 올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마침 교환학생에 지원해서 네덜란드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합격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구매한 것이 카메라와 소설책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 소설급의 문장력을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소설을 읽으면서 자극받을 내 머릿속 몇몇 뇌세포들이 논리에 목매는 내 의식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 일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볼 생각이었다. 카메라도 비슷했다. 적당히 수동적으로 조작해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가벼운 미러리스 사진기를 골랐고, 마침 사업을 정리하던 브랜드의 카메라였던 터라 성능 대비 저렴하게 한 대 장만할 수 있었다.
카메라의 시대가 저문다며 사업을 정리하는 상황과, 소설책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대림역에 있던 대리점에 방문해 카메라를 손에 쥐며 카드를 긁던 그 순간 머릿속에 지나갔던 말은 "나 뭐 하는 거지"였다.
인터넷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었다. 다만 없는 것이 있다면 내 의지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 귀차니즘이었다. 사진의 원리에 대한 영상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고, 소설도 노력하니 한장한장 읽어나갈 수 있었다. 교환을 나가 있는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조급함은 귀차니즘을 이겨낼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사진기를 이리저리 굴리며 손에 좀 익어갈 즈음, 마침 학교에서 열리던 '다큐멘터리' 수업이 있어 신청했고, 세 번 정도 출석했을까, 내 길이 아니구나 하며 때려쳤다. 그러고는 여행 다니며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일만 간간히 했던 것 같다.
어마어마한 정신승리의 산물일지, 중요한 인생의 깨우침일지 모르겠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잠시 접으며 한 생각은 '허무하다 느끼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 해봐서 질려보고, 이것은 아니구나 느껴봤으니 아쉽게 느끼지는 않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쎄, 사실 최소한의 노력도 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그냥 정신승리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아니다 싶었던 것이었으면 시간이 지난 지금 컴퓨터에 프리미어를 깔고 있지는 않았겠지?
지금은 현실 속에 있다. 과제하고, 졸업 준비하고, 용돈을 벌기 위해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4년간 변화가 없던 버킷리스트 수행하기 프로젝트에 뭔가 진전이 있다.
예쁜 글을 쓰겠다며 시작한 브런치는 결국 공돌공돌한 비행기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그 내용이 몇몇 분들에게 이쁨을 받았고, 지금은 꾸준하게 글을 기고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쁜 글과는 멀어졌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인갑다. 다만, 아름다운 글과 어울리는 브런치한테는 미안할 따름.
'공돌이'라는 단어를 걸고 글을 올린다. "역시 공돌이는..."이라는 반응으로 끝맺게 될지, "우와 공돌이가?"로 끝맺게 될지...
이제 다시 이번 주까지 올려야 할 공돌글이나 쓰러 가봐야겠다.
2017.07.03, 기숙사 방에서
비행기 꼬리날개가 왜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