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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Jun 19. 2017

비행기는 얼마나 빠를까?

#비행 속도의 개념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우리 머리 속에 빠른 것으로 제 이미지를 굳힌 지 오래다. 사람들에게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냐고 물어보면 보통 시속 1000km 정도 된다고 얘기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행기는 빠르면서도 빠르게 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


자, 오늘은 비행기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즐거운 해외여행 전에 한 가지 견뎌야만 하는 것이 꼭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길고 지루한 비행 시간일 것이다. 눈 앞의 화면만이 그 지루한 시간을 함께 해주곤 하지만, 영화 몇 편 보고, 쪽잠도 몇 번씩 잤다 깨기를 반복하면 빠르게 흐르지 않는 시간만 원망하게 될 뿐이다. 인간의 상실 심리 5단계 중 마지막 단계가 상황을 받아들이는(해탈하는) 것이랬나. "시간이 제 속도대로 흐르겠다는 걸 어찌하겠나"라는 마음으로 현실에 수긍하며 우리는 이런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한다.


한참 지났다 싶어도 비행기는 제자리.


  남은 거리를 보니 얼마나 먼 지 감도 잘 안 오는 숫자가 눈에 띈다. 무려  수 천 km. 그와 동시에 열심히 바람을 가르는 비행기의 속도도 표시된다. 시속 900km. 고속버스의 9배, KTX의 3배, 사람이 걷는 속도의 무려 225배. 실로 엄청난 속도다. '이 정도 속도면 금방 가겠지'라면서도 차마 남은 거리를 비행 속도로 나눠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쯤에서 지루함과 사투를 벌이는 승객들에게는 조금은 미안한 얘기를 하나 던져볼까 한다.

  바로.. 조종실 계기판에 표시되는 비행기의 속도는 시속 600km 남짓 밖에 안된다는 것.


순항중인 여객기의 주계기판


  정말? 직접 조종실에 들어가 계기판을 봐보자. 속도와 고도가 표시되는 주계기판의 왼쪽에는 속도, 오른쪽에는 고도가 표시된다. 위 사진을 보니 이 비행기의 속도는 255노트, 고도는 36000피트다. 고도를 보아하니 분명 순항중인 비행기가 맞는데, 속도가 255노트, 시속 470km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

  아니 조종사님!! 거짓말을 하신겁니까!! ㅠㅠ

  워워. 진정하시고 일단 얘기를 들어보시게. 금방 데려다 드릴게.


공돌이의 노트 #1  
  비행기와 배의 닮은 점이 하나 더 보인다. 비행기는 배와 같이 속도 단위로 노트(knot)를 사용한다.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경제수역은 200해리까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서 '1해리'는 1knot로 한 시간동안 가는 거리를 의미한다. 1노트는 약 1.8km/h 정도. 따라서 1해리(nautical mile)는 1.8km 정도다.




  같은 비행기에 탔는데 조종실과 객실의 속도가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조종실과 객실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던 모양인데, 일단 각자의 상황을 좀 살펴보도록 하자.


  인천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의 거리는 9000km다. 비행기가 이 거리를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시간 정도. 9000km를 10시간 동안 날아갔으니 비행기의 속도는 대략 900km/h로 객실에서 표시되는 속도와 비슷하다. 이제 궁금한 건 조종실의 속도다. 비행기의 정보를 가장 잘 알아야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비행기의 조종간을 쥐고 있는 조종사일텐데, 어째서 이상한 속도계를 사용하는걸까?



같은 속도 다른 느낌

희박한 대기


  속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비행기가 날고 있는 하늘의 특징을 잠시 살펴봐야 한다. 

  보통 비행기는 지상으로부터 약 10km 상공에서 순항한다. 10km는 자동차로 몇 분이면 가는 거리임에도, 땅에서 10km 떨어진 곳의 하늘은 우리가 숨쉬고 있는 땅 근처의 하늘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기온부터 무려 영하 50도에 기압도 지상의 30~40%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같은 하늘임에도 순항고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역시, 이 달라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다행히 비행기는 추위는 타지 않아 온도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지상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기압, 즉 공기밀도다. 공기 밀도는 공기가 얼마나 촘촘히 모여있는 지를 뜻한다. 숟가락을 들고 물에서 휘저어보고, 허공에도 휘둘러보자. 물에서 움직이기가 더 힘을 것이다. 공기의 밀도 차이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높은 하늘의 공기 밀도는 작다. 양력도 얻기 어려워진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행기 주위로 흐르는 공기 덕분이기 때문에 주변 공기가 촘촘할 수록 양력이 잘 발생하고 그와 동시에 공기 저항도 커진다. 그런데 이 공기가 하늘 높이 올라갈 수록 줄어든다는 것은? 양력도, 공기저항도 모두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낮게 날고 있는 비행기와 높이 날고 있는 똑같은 비행기 두 대를 상상해보자. 만약 둘 다 같은 속도로 비행하고 있다면 어느 비행기가 더 힘들게 날고 있을까? 그렇다. 높게 나는 비행기다. 낮게 날고 있는 비행기와 같은 속도임에도 공기가 희박하니 양력을 만들어내느라 애를 쓰고 있는 것. 


이 때 두 비행기에게 물어보자. 

"너 속도 어때?"


"충분해."

"어우 느린데."


아? 같은 속도인데 다르게 느끼는군!




 조종실의 주관심사는 비행기가 '체감'하는 속도다.


비행기가 체감하는 속도

인지 속도 (Indicated Air Speed)


  속도가 같아도 비행하고 있는 하늘의 공기밀도에 따라 비행기의 성능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살펴봤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속도'라는 개념이 비행기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데에는 비행기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받고 있는지, 양력은 충분하게 만들어내고 있는지 등 비행기의 성능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조종실에서는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보다도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게 난다고 '느끼고' 있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다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차가 빠르게 달리면 달릴 수록, 바람 때문에 손은 뒤로 더 밀리는 힘을 받는다. 비행기도 비슷하다. 비행기는 외부의 공기와 부딪히는 압력을 측정해서 "음 이 정도로 공기가 날 때리면 난 이 정도 속도로 비행하고 있겠군."이라고 '느끼고' 이를 인지 속도로 조종실에 표시해준다. 공기가 거세게 비행기를 때릴 수록 더 빠르게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지 속도는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가 아닌 공기로부터 느껴지는 '힘'을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의 비행성능을 잘 대변해주게 되고, 이 때의 속도를 비행기가 인지한 속도, '인지 속도'(Indicated Airspeed)라고 한다.


공돌이의 노트 #2 
  위 글에서 말한 '공기와 부딪히며 느끼는 힘'의 이름은 동압(Dynamic Pressure)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동압 뿐만 아니라 주변 공기의 정압, 온도 등을 측정한 후, 그 유명한 베르누이 공식을 이용해 속도를 산출해내게 되고 여기에 여러 보정작업까지 거치지만, 복잡하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궁금하면 댓글!


비행기는 체감 속도를 유지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실제 속도는 빨라지게 된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몇 줄만 더 내려가면 된다.


  비행기가 낮게 날고 있다면, 비행기가 인지하는 속도와 실제 비행 속도는 같다. 땅 근처의 공기밀도를 기준으로 설계가 된 것이다 보니, 비행기가 인지하는 것이 곧 실제 비행 속도인 것이다. 이제 비행기가 서서히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도가 높아질 수록 공기밀도는 낮아지고, 비행기를 때리는 공기의 힘이 점점 약해진다. 그러니까, 실제 속도는 일정해도, 비행기가 느끼는 속도는 줄어드는 것이다.


  한편, 비행기는 비행 성능과 직결되는 '인지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상승하게 된다. 자,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록 비행기를 때리는 공기가 줄어드는데도 비행기가 느끼는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뜻은? 그렇다! 공기가 줄어드는 대신 더 빠르게 공기를 맞게되는 것, 즉 실제 비행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종실과 객실 사이의 오해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지상에서의 공기밀도와 차이는 커지고, 비행기가 느끼는 속도와 실제로 비행하는 속도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우리가 순항 고도에서 900km/h로 비행하고 있어도, 줄어든 공기 밀도 때문에 비행기는 자신이 500km/h 정도로 날고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면서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빼먹었다. '하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자, 비행속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바로 그것.


바람.


하늘의 무빙워크

바람과 진대기 속도(True Air Speed)


  2015년 1월 경, 뉴욕에서 런던으로 날아가던 영국 항공의 비행기가 예정 도착 시간보다 1시간 반 일찍 도착한 사건이 있었다. 이 비행기의 비행 속도는 무려 시속 1200km였는데, 이는 소리의 속도인 1080km/h 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여객기가 음속을 넘기라도 한 것인지, 외계인이 와서 시공간을 왜곡하기라도 한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실 이 비행기는 음속을 넘지도 않았고, 무리해서 과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속 40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부는 기류에 올라탔을 뿐!


  우리가 말하는 바람은 보통 '기류'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 기류는 하늘의 보이지 않는 무빙워크와 같은 존재다. 여기서 새로운 속도가 하나 등장한다. 무빙 워크 위를 움직이는 속도, 즉 비행기가 바람을 가르는 속도를 '진대기 속도'(True Air Speed')라고 한다.


비행기가 공기를 '가르는' 속도, 진대기속도


  바람이 없는 하늘이라면, 대기 속도와 비행기의 지상 속도는 같다. 바람이 없으니 무빙워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무빙워크 위를 걷는 속도가 곧 밖에서 보는 속도와 같은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이제 뒷바람이 분다면 어떻게 될까? 무빙워크가 나를 밀어주는 꼴이니, 밖에서는 무빙워크 위를 움직이는 속도에서 바람의 속도만큼 빨라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비행기의 입장에서 얘기해보자면, 비행기는 뒷바람에 올라타, 실제로 바람을 가르는 속도(진대기속도)보다 더 빠르게 땅 위를 날아가는 것이다!



승객들의 관심사

지상 속도 (Ground Speed)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실제 속도'라고 얘기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속도'라는 것은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가는 속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있어야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니까.

  지상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속도. 그러니까, 땅에 서 있는 사람이 비행기를 봤을 때 느끼는 속도, 혹은 비행기가 땅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속도를 '지상 속도'(Ground Speed)라고 한다. 승객들이 보는 화면에 뜨는 현재 비행 속도 900km/h는 지상을 기준으로 비행기가 이동하는 속도인 지상 속도다. 한글로 보면 '비행 속도'로 뜨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로 보면 'ground speed'라고 표시해주는 항공사가 많으니, 영어로 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이제 영국 항공의 케이스가 정확하게 이해될 것이다! 이 비행기의 '지상 속도'는 시속 1200km였고, 지상 기준으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예상 도착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때 영국항공이 운 좋게 올라탔던 기류는 시속 400km이었기 때문에, 비행기가 실제로 공기를 가르는 '대기 속도'는 시속 800km 정도다. 즉, 음속보다 한참 느리게 날았던 것이다. 게다가, 고도가 높았기 때문에 비행기가 인지하고 있는 '인지 속도'는 대략 시속 500km 전후였을 것이니, 비행기 입장에서는 "음 난 500 정도로 날고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보고 음속보다 빨랐다네?" 라고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대 속도 그 이상으로

비행기가 높이 나는 이유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땅에 붙어서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움직이기도 하고 또 그 특성이 변하기도 하는 '하늘'을 날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속도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 끝났다! 이제 실제 조종실 계기판을 보며 오늘의 이야기를 모두 정리해보자. 


왼쪽은 항법 화면, 오른쪽은 주계기판.

  사실 조종사는 이 세 가지 속도를 모두 다 알고 있다. 그중 비행에 가장 중요한 인지 속도가 주계기판에 표시된다. 반면 지상 속도(GS)와 진대기 속도(TAS)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와 함께 항법 화면 왼쪽 위에 조그마하게 표시된다. 속도 개념을 마스터한 우리는 이제 저 숫자들의 의미를 안다.


  바람을 가르는 속도인 진대기속도(TAS)는 448노트지만 바람이 왼쪽 뒤에서 약 60노트로 불고 있다. 뒷바람이므로 비행기가 실제로 지상을 지나가는 속도는 진대기속도보다 빠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실제로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상 속도 GS는 484노트 (시속 900km/h)로 TAS보다 빠른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주계기판 왼쪽에 표시되고 있는 인지 속도는 혼자 생뚱맞게 265노트 (시속 490km/h)를 표시하고 있다. 객실에서는 시속 900km의 속도를 보지만, 비행기는 고작 500km/h의 속도를 인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비행기의 속도를 이해하면, 왜 비행기가 굳이 높은 하늘까지 올라가서 비행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비행기가 최대한 견딜 수 있는 '인지 속도'는 약 시속 600km. 공기가 두텁게 깔린 낮은 고도에서 비행했다면 비행기는 절대로 저 속도를 넘지 못한다. 대신 공기 저항이 적은 높은 하늘로 올라가면 시속 500km 정도에서 느껴지는 저항만으로 훨씬 빠른 속도인 시속 900km로 비행할 수 있게 된다. 즉, 높이 올라갈수록 적은 저항만을 느끼며 더 빠르게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돌이의 노트#3 
  높이 올라갈 수록 저항도 줄어들지만, 양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비행기가 무게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고도가 달라지게 된다. 보통 장거리 국제선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는 비행 초반에는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순항하다가, 기름을 소비해 점점 가벼워지게 되면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비행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나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복잡해 보이지만 기억할 것은 딱 세가지다. 비행기가 비행하는 데 필요한 '인지 속도', 비행기가 실제로 바람을 가르는 속도인 '대기 속도', 여기에 바람의 영향까지 추가해 실제로 땅 위를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 지를 알려주는 '지상 속도'까지. 


다행히 객실에 표시되는 속도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론 조종실 계기판의 속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각자 관심사가 달랐을 뿐이다.




영국항공 기사 링크


사진: jetphotos.net, airliner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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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행기는 생각보다 느리다? | 더퍼스트미디어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우리 머릿속에 '빠른 것'으로 이미지를 굳힌 지 오래다. 사람들에게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냐고 물어보면 보통 시속 1000km 정도 된다고 얘기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행기는 빠르면서도 빠르게 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 자, 오늘은 비행기의 3가지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즐거운 해외여행 전에 한 가지 견뎌야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일 것이다. 영화 몇 편 보고, 쪽잠도 몇 번씩 잤다 깨기를 반복해도 목적지는 아직 한참이다. 빠르게 흐르지 않는 시간만 원망할 뿐. 인간의 상실 심리 5단계 중 마지막 단계가 상황을 받아들이는(해탈하는) 것이랬나. 현실에 수긍하며 우리는 이런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한다. 한참 지났다 싶어도 비행기는 제자리. 남은 거리를 보니 얼마나 먼 지 감도 잘 안 오는 숫자가 눈에 띈다. 무려 수 천 km. 그와 동시에 열심히 바람을 가르는 비행기의 속도도 표시된다. 시속 900km. 고속버스의 9배, KTX의 3배, 사람이 걷는 속도의 무려 225배. 실로 엄청난 속도다. '이 정도 속도면 금방 가겠지'라면서도 차마 남은 거리를 비행 속도로 나눠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이쯤에서 지루함과 사투를 벌이는 승객들에겐 조금은 미안한 얘기를 하나 던져볼까 한다. 바로… 비행기의 최대속도는 시속 500km 남짓 밖에 안된다는 사실. 순항 중인 여객기의 주계기판 정말? 직접 조종실에 들어가 계기판을 보자. 속도와 고도가 표시되는 주계기판의 왼쪽에는 속도, 오른쪽에는 고도가 표시된다. 위 사진을 보니 이 비행기의 속도는 255노트, 고도는 3만6000피트다. 고도를 보아하니 분명 순항 중인 비행기가 맞는데, 속도가 255노트, 시속 470km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 아니 조종사님!! 거짓말을 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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