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사고 #ACI #인간-기계 #STS
핸드폰을 또 떨어뜨렸고 애석하게도 액정이 고장났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질문. 우리가 원하는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계를 보며 '고장났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우리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무수히 많은데 말이다. 오죽하면 '계획은 깨라고 있는거지!'라든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거야'라는 말이 익숙할까.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각이 되자마자 티켓예매 버튼을 클릭했는대도 매진이지를 않나, 팀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고 싶은데 함께 일하는 친구는 오늘따라 일을 좀 더 하자고 하지를 않나. 그럼에도 우리는 매진되어버린 좌석이나 깐깐한 친구를 보고 '고장났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독 손에 들린 핸드폰의 고장난 액정을 보고는 '고장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장났다는 말은 단정적이다. 우리가 다루는 물건이 '틀렸다'라고 확신하는 말이니까. 그만큼 우리는 기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답이 정해져있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틀렸다(고장났다)'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 타인의 의견에 반론은 제기할 수 있어도 단박에 '고장났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겠다. 어찌됐든 중요한 점은, 우리는 기계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핸드폰 애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확실해보인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기계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잘 생각해보면 사람의 이해범위를 넘어선 기계는 벌써 도처에 널려있다. 무인계산대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고 카드로 결제했는데 '결제실패'라는 문구가 뜨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때 우리는 카드가 잘못된 것인지, 카드 리더기가 고장인 것인지, 아니면 계좌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면 우리는 다시 결제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카드도 바꿔보기도 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직접 찾아나서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기계를 마주한다면, 우리는 기계가 '고장났다'고 단정짓지 않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를 의심(내가 잘못했나?)하기까지 한다.
카드 리더기처럼 단순히 원리를 모르는 것을 넘어, 우리는 우리의 인지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기계를 다루기도 한다. 원자력 발전소나 비행기는 복잡한 기계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이 거대한 '기계'의 모든 면면을 상세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각 부분별로 깊은 이해를 가진 여러 전문가들에게 기계의 총체적인 이해가 분산되어있는 형태로 봐야할 것이다. 이 말은 즉, 발전소가 비행기처럼 복잡한 기계가 보이는 반응에 대해 개개인은 부분적인 이해를 할 뿐, 그 누구도 기계가 '고장났다'고 이야기 하기 힘듦을 의미한다.
기계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기계의 반응 자체를 예측할 수 없게 설계되는 기계가 등장하고 잇다. 세상을 통계적으로 학습해 결과를 추정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이 좋은 예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기게가 확률적으로 얼마나 정확한지를 제시할 수 있을 뿐 (90%의 확률로 정답을 얘기할거에요!) 특정 상황에서 기계가 어떻게 반응할 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힘들다. 강아지 사진을 보여줘도 아주 적은 확률일지라도 기계가 '고양이!'라고 충분히 답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확실한 경우에는 우리는 기계가 잘못된 답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만, 만약 우리도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헷갈리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 기계가 '고양이!'라고 답했다면 우리는 "정말 고양이인가?"라고 생각하며 기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이 상황, 왠지 익숙하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차마 '틀렸다'라고 쉽게 단정짓기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우리가 기계를 면밀히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어지고, 또 예측할 수 없는 기계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기계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있다. 특히,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파악해 알아서 대처해주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보행자가 앞에 갑자기 나타날 때 급제동을 거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 기능은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이 장치의 목적이기에 우리의 인식범위를 애초에 벗어난 곳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이 기능이 우리가 탄 차를 갑자기 세웠다면 우리는 '앞에 뭔가 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게의 '생각'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처럼 기계는 사람의 인식범위를 벗어나 자체적인 '의견'을 개진할 지위를 얻고 더 많은 자율성을 지니게 된다. 기계와 사람 사이의 지배-피지배 패러다임은 옅어지고 우리는 기계와 공생해야만 하는 세상에 노출된다. 사람은 기게를 설계했지만, 기계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교환한다. 이 두 '존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갈 것이다. 어쩌면, 우린 이미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자율주행차량, 스마트팩토리 등 '스마트'한 기계의 등장을 보며 기계의 지능은 더욱 발달하고 우리의 삶에 깊게 들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에 우리는 기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하는 것인지, '고장난 기계'라는 말을 하기 힘든 사회는 어떤 못브일 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기계의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어디서 엿볼 수 있을까? 이 시대 가장 '스마트'한 기계와 가장 잘 훈련된 인간이 맞닿는 지점이면 적절할텐데. 아 혹시 비행기 조종실은 어떨지..! (본색)
그렇다. 난 비행기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미래의 기계-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하겠다는 포부는 너무나 원대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수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조종실은 가장 발달한 자동화 기계와 훈련된 인력(조종사), 그리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점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다. 실제로 현재 발생하고 있는 비행사고의 대부분은 지능화된 기계와 사람의 상호작용과 깊게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여기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게될 것인지, 조종실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공존의 이야기를 나누면 알게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는 사람(조종사)과 기계(비행기)가 첨예하게 대립, 협력하며 발생했던 비행기 사고 이야기를 공돌이의 시선으로 조용조용 이야기해볼까 한다.
기대해주세요~!
참고문헌
[1] Controlled Flight Into Terrain Accident Analysis Report (2014 - 2014), IATA
[2] Human factor as a cause of aircraft accidents, Nikolay Lyssakov et al., II International Scientific-Practical Conference "Psychology of Extreme Professions" (ISPCPEP 2019)
[3] Sun, Ruishan & Lei, Wang & Zhang, Ling. (2007). Analysis of Human Factors Integration Aspects for Aviation Accidents and Incidents. 4562. 834-841. 10.1007/978-3-540-73331-7_91.
[4] AMT handbook addendum, Chapter 14. Human Factors
[5] A Statistical Analysis of Commercial Aviation Accidents 1958-2019, Airbus
[6]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홍성욱,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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