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궁시렁궁시렁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나...
8년 전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를 갔었다. 유럽도 처음이었고, 사실 네덜란드가 어떤 나란지도 잘 모르고 갔었다. 대상 학교에서 기숙사 겸 아파트를 제공해 준 것이었기에, 방에는 침대와 책상을 비롯한 기본적인 가구도 다 갖춰진 상태였다. 밤늦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하자 학교 측에서 나온 인솔 학생들이 나를 데리고 방까지 데려다줬다. 깜깜했던 밤이었던 만큼,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가 어디에 있는 어느 방에 들어오게 된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유쾌한 노란 머리 남학생 둘이 친절히도 내 캐리어를 방에 가져다주며 굳나잇!을 외치고 문을 닫았다. 집을 떠난 이래로 꾸준히 있어왔던 소음이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라졌다. 유럽 특유의 노란 조명불빛, 하루종일 동고동락한 캐리어 둘, 그리고 고요한 적막 속에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흰색 책상 위에 동전과 비행기표를 비롯한 잡동사니를 흩뿌려놓고,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를 했다. 보라색 침대에 몸을 뉘이고 불을 끄려는데 왠지 어색했다. 침대 머리맡에 노란색 작은 등을 한참 켜놓은 상태로,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어색한 곳에서 잠들자니 만 하루 전 한국 집에서 여느 날처럼 잠에서 깼던 때가 떠오른다. 침대등을 끄고 깜깜해질 내 시야를 예상하며 생각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나...
시작의 적막함과 우려와는 달리, 교환학생 반년 간의 추억은 내 인생 최고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지나가는 후배를 마주하면 꼭 하는 이야기가 교환 가보라는 이야기가 되었을 정도로, 난 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라떼가 되어있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3년쯤 했다. 슬슬 학계로 향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돌아갈 생각에 드릉드릉하고 있었는데, 시기 좋게 텍사스 오스틴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학원 지원할 때야 이게 유럽인지 북미인지, 서부인지 동부인지 알 바가 아니다. 문제는 막상 진학할 대학을 정한 후였다. 나는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대학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계약서에 서명해서 돌려보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살 집을 알아서 구해오라'는 안내 메일을 받았고 그제야 "텍사스?"라고 그 이름을 불러 처음으로 꽃이 되었다나 뭐라나.
텍사스 하면 사막이랑 선인장,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테이크 정도 떠오르는 동네였는데, 거기에 대학이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잘 다가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 속에 있는 오스틴이라니. 이건 무슨 동네인고. 너무 덥지는 않을지, 황량한 곳은 아닐지, 안전할지, 서양의 대학원은 어떤 분위기일지, 사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감자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는 확실하군.
나는 또다시 무슨 부귀영화 어쩌구를 읊는 어색한 첫날밤을 보내겠지.
텍사스에 도착해 자리 잡은 지 어언 1주가 되었다. 이제 땅바닥에서 잠을 청하지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도, 박스가 널브러진 바닥 위를 뒹굴지도 않는다. 생활이 지속가능성을 갖추었고 이제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할 때다.
그리 대단한 목표의식을 갖고 향한 텍사스는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는 시기를 이 땅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게다.
지금까지 비행기 자체에 대한 글을 써왔다면,
이제는 덕업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이곳에서의 일을 끄적여보고자... 시도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