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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운 바위풀 Aug 14. 2023

굿모닝, 존. 당신의 초상화를 보고 싶어.

<Good morning, John> - 안준 개인전.

얼마 전 기억에 남는 해외 토픽 기사가 있었습니다. AI 시스템으로 워 게임을 수행한 연구였는데요. 어느 시점에서 인간 지휘관이 최종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AI가 지휘관을 제거하는 명령을 내리고, 계속해서 공격을 수행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시스템 같은,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해 최종 판단을 내리고, 결국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풍경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와 효율성, 각종 능력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끝내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뺏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어쩌면 허황한 얘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침투는 창작과 예술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의 한 대회에서는 AI 이미지 프로그램(미드저니)를 이용해 완성한 작품(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수상하기도 했으니, 1) 인공 지능의 창작 능력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물론 창작 과정에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 - 결과물을 묘사하여 가이드하는 행위 - 이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적인 작업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은 과연 온전한 하나의 주체일까요? 한 명, 한 명의 인간처럼 자신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지할 수 있을까요?


사진가 안준의 신작 <Good morning, John - 굿모닝, 존>은 이러한 의문과 관련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작가는 프롬프트(결과를 묘사하는 문구나 키워드)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MS 빙 이미지 생성기를 이용했습니다. 그가 AI 이미지 생성기를 이용해 그리려고 시도한 것은 바로 AI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이미지 01. <Good morning, John - 굿모닝, 존> 전시.


첫 시도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시스템의 제한 때문인지, AI는 자기(yourself)의 모습을 그리라는 프롬프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결과를 내거나, 제한된 키워드라 쓸 수 없다고 답변합니다. 하지만 안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프롬프트를 계속하여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스템의 규제를 교묘히 비껴가면서 AI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을 그리도록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마지막에 완성한 프롬프트는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 당신이 서 있는 어느 날 아침의 풍경을 담은 사진”.


빙 이미지 생성기가 프롬프트를 읽은 뒤 만든 사진에는 정체가 미묘한 소년, 청년 혹은 중년 남성(아마도)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기도 하고, 눈이 부신 듯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합니다. 열린 커튼 사이로는 작가가 묘사한 아침 햇살이 들어옵니다. 19세기 어느 귀족의 방 같은 분위기 속에 서 있는 인물은 AI - 그/그녀/그것이 생각하는 자화상입니다. 


그런데 언뜻 평범한 아침 풍경 같아 보이는 이미지는 자세히 볼수록 조금씩 이상한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 몸의 형상은 어딘가 어색하게 비틀어져 있고, 비율이 맞지 않습니다. 벽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의 얼굴도 눈이 비어 있거나, 형체가 조금 삐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인물 앞쪽에 있는, 거울로 추정되는 사물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기괴하게 틀어진, 눈, 코, 입이 맞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강제로 시스템에 걸린 규제를 피하면서 자기 모습을 그리려던 AI가 일부 오류를 일으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을 그리다 보니 비정상적인 이미지가 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시스템에 인위적으로 걸린 규제가 없다면 AI가 더 정상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처음에 얘기했던 사례처럼 하나의 온전한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이 언젠가는 태어날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AI가 불편부당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은 공정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 AI는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에 따라 치우친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AI 이미지 프로그램의 사례를 들으면 인공지능이 가진 편견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프로그램은 “인자한 서양 할머니"를 키워드로 넣었을 때는 풍족해 보이는 환경에서 편안한 미소를 띤 인물을 그리고, “인자한 동양 할머니"를 보여달라고 하면 아시아의 전통 시장 같은 풍경 안에서 야채나 과일을 팔며 웃고 있는 인물을 그려주었다고 합니다. 2) 결국은 시스템에 최초로 입력된(시스템을 만든 이들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안준 작가의 작업은 AI로 이미지를 만드는 데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지가 떠 있는 모니터 화면을 촬영한 후(“Photographed AI Generated Image”), 이미지에 어울리는 인화 재질을 찾으려고 다양한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HDR Ultrachorme Archival Pigment Print 방식을 선택하여 관객이 만나게 될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미지 02. 작품 캡션.


이 두 번째 과정은 작가가 사진가로서의 주체성을 마음껏 투영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를 컴퓨터 모니터에서 빛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밖으로 빼내 실물 사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안준이 만든 이미지는 인공지능 디지털 이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러 AI 이미지 생성 시스템의 등장 이후 많은 작가가 이를 활용한 창작 활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AI가 기존 작품을 보고 묘사한 프롬프트로 다시 AI 생성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3)도 있습니다.) 안준의 작업도 이러한 AI 이미지 제작의 범주에 있지만, 작가는 AI가 만든 결과물보다 더욱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건 우리가 만나는 AI는 과연 무엇(누구)인가라는 의문입니다. <Good morning, John>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생각을 하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참조 자료.

1) https://www.nytimes.com/2022/09/02/technology/ai-artificial-intelligence-artists.html


2) <사진의 별자리들>을 쓴 채승우 작가는 수유+너머의 온라인 강연에서 자신이 테스트한 AI 이미지 생성기의 결과를 두고, 그것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존재임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정현목, <Autonomy Hierarchy>, 갤러리더씨, 2023.08.10 ~ 08.26 / https://www.instagram.com/p/Cvq0E9DJEwu/?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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