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밖에 모르던 대학시절.
취업을 준비하면서 무용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
전공 무관, 경력 무관.
신입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있으면 겁 없이 도전했다.
자기소개서를 쓸 적에 어려움은 없었다.
왜냐하면, 무용한 것 외에 어차피 쓸 말이 없으니까.
나는 지금 뭐든 할 수 있다고 열려 있으니까.
첫 출근하던 그날은 잊을 수 없다.
첫 직장에서의 추억도 모두 남아있다.
가장 낮은 급여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삶보다 나은 월급.
안정적인 업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토 달지 않고, 의견 말하지 않고 하면 평화롭게 다닐 수 있는 직장.
안타깝게도 나는 나의 주장이 강했고, 하고 싶은데 많았으며 그만큼의 급여를 원했기에 자주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여러 분야를 경험하고, 여러 조직을 거쳐 다양한 업무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나를 원하는 조직들이 많았고,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거쳐간 조직이 많아질수록. 내가 했던 일이 많아질수록. 그다음 내가 함께할 조직과 일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아니, 불가능해진 것 같다.
서른이 넘은 지금.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탈서울 후 춘천으로 이사했다. 한 해 동안 집 짓는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일은 하지 못했다. 이제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채용 공고가 올라올 수 있는 기관들은 정해져 있다. 내가 농사를 할 것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공장에 취직할 것이 아니기에 갈 수 있는 곳들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적힌 업무 내용은 포괄적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게 될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또한 연봉은 내 기준에 무척 낮았다. 그래도 내가 연차가 있는데, 이전 직장에서 받던 급여가 있는데, 이 연봉을 받고 일해야 한다고? 그곳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연봉만 보고 혼자 김칫국 드링킹이다. 그래도 어디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 일단은 생활비는 벌어야 하잖아?
자기소개서를 오랜만에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뭐라고 써야 하지???
경력란에 정말 많은 조직들이 적힌다.
업무도 많다.
그런데, 같은 업무는 하나도 없다.
나같이 얕고 범위가 넓은 다능인은 어떤 것으로 경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를 소개해야 하는데,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것 같은 분량이다. 이 중에서 내가 지원할 기업이 원하는 내용은 있는 것일까?
그동안 했던 일은 무척 많은데,
너무 스펙터클해서 하나하나 언급하려면
날 밤을 새워야 할 스토리들.
나의 인생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또 써야 하나..
얼마 전 만난 모임에서 나를 소개하는데, 내가 했단 일을 소개하는데, 정말 너무 어려웠다.
이래서 팀장급 이상의 사람들은 조직을 잘 옮기지 않는 것이군! 휴…
경력이 없을 초렙 시절에도, 경력이 많아진 지금도
나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고, 자소서도 어렵고, 함께할 조직을 찾는 것도, 내가 할 일을 찾는 것도 어렵다. 나이를 먹으면 조금은 수월할 줄 알았는데, 어째 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