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현 Sep 07. 2020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카페와 노을 2020

*7월,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글입니다. 


 

차일만, 남국의 향기



안녕하세요, 미작 여러분      


여긴 지금 집근처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의 DMC역 앞입니다. 이곳에 24시간 카페인 탐앤탐스 안에 있어요. 이곳에 요즘, 자주 저만의 출퇴근을 하고 있답니다. 보통은 아이들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이쪽으로 오는데, 오늘은 오전 시간에 쉬었던 터라 육아 퇴근 후인 밤 11시에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이 카페는 결코 잠드는 법이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대학생들로 보여요. 혼자서 노트북을 켜놓고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고 있기도 하고, 서너명이 모여 그룹 스터디를 하고 있기도 하네요. 늘 비슷한 모습이에요. 대부분 20대 대학생들로 보이는데, 지금은 시험기간도 아니건만… 언제나 30% 정도의 여백을 두고 만석입니다.      


그들은 언제 잠드는 걸까요. 스스로도 이렇게 한밤에 나와 있으면서…. 잠들 수 없는 밤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그들과 같이 저도 아이스아메리카노 그란데를 시키고, 책을 펼쳤다가 다시 덮고, 문득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인생의 중간항로’라는 말이 생각 나서요. 


가족이 모두 잠든 밤, 카페에서 미작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이 순간이 이어지는 연속선상인 올해, 2020년이 저에겐 인생의 중간항로인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일어나 삶을 시작하죠. 내게 주어진 의무들을 부산스럽게 이행해요. 오전 시간 잠시 제 시간을 가지고 체력을 비축해놓았다가, 오후에 정신과 육체를 클라이막스로 사용해야 하는 노동이 이어지죠. 슈퍼와 놀이터에서 체류하는 시간, 설거지와 청소, 공과금 납부, 청약 신청서류 준비, 아이들의 뒤처리, 식사준비, 씻기기, 칫솔질, 책 읽어주기, 아이들 싸움이나 칭얼거리는 소리의 견딤…. 가끔은 이런 모든 노동이 삶의 부자재, 부산물처럼 느껴져요. 쳇바퀴 돌아가듯이 시간을 집어삼키죠. 


아이들을 위하는 자연스러운 마음,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으로 감사한 나날도 많아요. 아이들이 순진무구하게, 해맑게 ‘아이들’로 있는 이 시간이 언젠가는 분명 너무나 그립고 애틋해지겠죠. 그럼에도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요. 아이들과의 모든 일과를 서둘러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만을 바라는 시간도 와요. 그런 마음이 그림자처럼 등 뒤에 무심히 있다가 전면에 떠오르는 거죠. ‘아, 이 일터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 집에서 잠시라도 나가고 싶어’ 하면서.      


그래서 이 야심한 밤 막차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와있나봅니다. 그리고 제가 미작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은 좀 더 제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때문이었고요.      


만약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런 삶의 고됨과 생각의 질주에 대해 혼자서 또 골몰하고 있었겠지요. 제 일기장만이 저를 담아줬을 겁니다. 누군가는 이런 비생산적인 생각과 감정에 빠져있는 제가 참 한심해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릴 때부터 참 ‘생각만 많은’ 경향이 있었더랍니다. 


인생을 돌아보건대, 제 인생은 초등학교 때까지가 가장 안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때까지는 자유롭게 책을 정말 많이 읽었거든요. 아이들과 교환일기, 개인적인 글도 많이 써서 나답게 삶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기를 거치면서, 성적을 놓고 무한 경쟁 시기로 진입하면서 저는 서서히 붕괴되고 해체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그 시스템에 6년 개근을 하면서 버텨나갔어요. 비평준화 시기로, 고등학교 입시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지역에서 가장 잘한다는 학교에 진학했는데, 사실 저는 그 학교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다만 중3 때 만났던 한 친구와의 연대감, 친밀감이 너무도 강해서 그 친구가 간다는 학교에 그럼 나도 따라가야겠단 생각 뿐이었죠. 


그러나 막상 진입하자, 저와 그 친구와의 너무나 소중했던 관계도 어그러지고 저는 표류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목적에 동아줄을 부여잡고 맹목적으로 책상앞에 앉아있던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있어야 했죠. 저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정말 방황을 많이 했답니다. 고2-고3때는 자리에 앉아있다가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와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 정문을 나서 옆 초등학교 교단에 자주 앉아있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공황 발작같은 것을 조용히 견뎠던 것 같아요. 이렇게 몇 년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하다가, 인격적으로도 많이 해체되었던 것 같아요. ‘나 다움’이나,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이 숨을 참아가며 물 아래에서 잠수하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대학생 이후부터는 다행히 좀 더 자유로워졌어요. 사람 간 친밀감을 경험으로 겪어나가던 시기였죠. 진로에 대한 고민은 일과 일터에서의 적응으로, 돈벌이 앞에 놓인 숙제들을 처리해가는 시간으로 이어지고요. 이후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양육자로서의 부산스러운 삶이 이어지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2020년이란 섬이 눈 앞에 보이더군요. 그곳은 저만의 휴양지랍니다. 어린아이처럼, 본연의 나 자신으로 시간을 보내요. 그곳에서 미작 여러분과 책을 잃고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요. 노을을 보면서 시시콜콜한 담소도 나누고요. 어릴 때부터 저는 노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는 것 없이, 오늘도 날이 저물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노을은 제게 안타까움과 같은 정서였죠. 그러나 이곳에서의 노을은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그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 시간, 지나간 시간들을 조금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 미작인과의 한 해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알사탕(백희나) / 우리의 서랍 속 알사탕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