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팬들이 편지를 쓴다 할때, 대체 왜 쓰지? 그리고 무슨 말을 쓰지? 했었는데, 그런 제가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진짜 궁금한데, 왜 뭘 쓰는지 안 알려주지?)
2016년 가을, 공연장에 갔습니다.
왜 갔냐고 물으신다면, 당시 저의 취미는 '콘서트 다니기'였습니다.
아티스트, 혹은 아티스트의 노래보다는 그저 공연장의 분위기를 즐기려 다녔고, 저의 자리는 늘 제일 뒷쪽이었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사무실 길 건너편이 공연장이었고, 그런 계기로 표를 예매했습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3층 뒷자리였지요.
공연장이 사무실 지척인 관계로 매우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서는 이 무대를 혼자 어떻게 채우지?란 의문만 들었습니다.
그 공연장은 제가 많이 갔던 곳이기도 했고,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 발레, 뮤지컬등을 봤던 곳이라 단독으로 무대에 선다는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그 3층에서 저는 압도당했습니다.
데뷔곡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어서 저는 그 곡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 이게 이런 노래였어' 했습니다.
전곡을 들어본 게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소절 소절만 들어봤었나 봅니다.
그 동안 백번까지는 아니어도, 수십번의 콘서트를 다녔지만 처음으로 앞에 앉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영화, 공연을 같은 걸 반복해서 보지 않는 내가, 이 공연을 다시 봐야지, 꼭 앞자리에서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공연은 금,토,일이었고, 저는 금요일의 공연을 봤고, 바로 토/일 공연을 알아봤는데 빈자리가 없더군요. 제가 아티스트를 몰라도 너무 몰랐군요. 당시 공연은 투어공연이었고 다른 지역에서의 공연들도 계속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앞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이내 저는 저의 일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해 12월 31일, 저의 마지막 행사인 다이어리 교체를 하던 중, 다이어리 표지에서 떨어지는 종이 한장.
그 날의 콘서트 표였습니다. 어떤 공연이든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티켓을 버렸는데, 이 표는 그러질 못하고 집에 까지 와서 다이어리에 껴두었나봅니다.
그제서야 다시 생생히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들..
바로, 다시 콘서트를 알아보니 일주일 뒤에 수원에서 있었고, 최상의 만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7번째줄에 표가 있어서 냉큼 구매했습니다.
공연장 가는길,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내가 익숙한 공연장, 익숙한 동네가 아니라, 여긴 체육관, 그리고 낯선 곳... 그리고 추위와 눈까지..
한번 본 공연을 두 번 안 보는 내가, 이번에 보고서 지난번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산산조각 나면 어쩌지..
이런,너무나도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아티스트를 몰라도 너무 몰랐네요.
감기로 목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 저음에서는 좀 흔들리지만 완벽한 고음..
사람의 목소리가 맞나?
저는 다른 지역의 콘서트 2번을 더 가게 됩니다.
동시대를 살고 공유할 수 있다는기쁨이 넘쳐났고, 그리고 더 빨리 알지 못했던 시간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해, 저는 40이 되었습니다.
나이먹는 것에 덤덤했던 제가,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갑자기 나이를 3살씩 더 먹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의 순리라 당연하다 여겼었는데.. 40이 되는 순간 무너졌습니다.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40앓이를 아주 호되게 했습니다.
그 때, 유튜브에 올려진 아티스트의 예전 영상들을 보면서 그 시간을 스스로 위로받으며 보냈습니다.
아니, 이런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려둔 누군지 모르는 당신들은 정말 천사군..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갔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저의 콘서트보러다니기 취미를 강제로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전국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앞자리를 위해 예매오픈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앞자리표를 사고, 공식홈페이지에서 팬을 대상으로 파는 표는 입금순으로 자리가 배정되므로 앞자리를 가기 위해 입급 예행연습까지 해보고..
이거, 내가 뭐하는 짓인가, 민망하고 기가 막힘에 혼자 깔깔거려보기도 하고..
가보지도 않은 지역들도 가보고...
그러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 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앞으로 갈 콘서트들이 줄줄이 있었고,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콘서트를 가도 되지만, 할머니 49재까지는 콘서트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각별했던 할머니를 충분히 애도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의 49재날, 청주에서 콘서트가 있었고, 그 날 공연의 짤로 콘서트에서 '캐롤'을 부른 것을 봤습니다.
할머니와의 영원한 이별날, 그것만으로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음날, 표도 없이 무조건 청주로 갔습니다. 공연을 봤는데, 마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전국투어도 끝나고, 소위 '막공'이라는 공연도 가고...
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왔습니다. 어떤 공연도 갈 수 없었던 시절..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이제는 공연을 볼 수 있나 했는데.. 소속사에서 문제가 있더군요..
또 그렇게 공연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공연을 안 본지 시간도 꽤 되었고, 저도 다른 콘서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합니다.
음.. 괜찮네.. 합니다. 취미를 다시 찾았습니다.
슬슬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이 갑니다.
그러나 이 순간도 잠시….
팬미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준비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솔직히 갈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저 자신이 팬인지도 모르겠고, 그 자리가 어색하고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간다면, 마치 남의집 잔치에 구경간 사람 모양새 같을 것 같았습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갑작스런 주위의 상황(혹은 도움)으로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더군요.
단 두 곡의 노래인데...
팬미팅에 대한 한줄평은 역시 나의 본진이 최고….
그러나 너무 하군.. 팬미팅 다음주에 예매한 콘서트가 가기 싫어졌습니다. 저는 콘서트다니기 취미를 또 강제 박탈당했습니다.
남들은 저에게 팬이라 하지만, 저 스스로가 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팬이란건 제게 참 낯설지만, 제 삶에 때로는 위로였고, 때로는 활력이었고, 때로는 에너지였던…. 저의 감사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