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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May 19. 2020

돈을 쓰는 방법을 생각하다 (feat.재난지원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돈 '잘 쓰기'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혹은 프리랜서로 자신의 재능을 팔든, 아니면 돈을 벌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의 소득으로 돈을 소비하면서 우리는 경제생활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더욱 많이 벌어서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차를 끌고, 남보다 더 나아보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때로는 경쟁을 한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벌어서 내 가족이 먹고도 충분히 남은 것을 여유롭게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경기도 성남시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다. 아이가 두 명, 4인 가족이라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정부 지원금을 꽤 많이 받은 편이 속한다. 경기도와 성남시에서 각각 1인당 10만원씩 40만원을 줬고, 아동 1인당 40만원씩 총 80만원의 돌봄 쿠폰을 받았고, 중앙정부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96만원 받았다. 모두 현금은 아니고 성남시 또는 경기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 같은 포인트로 지급받았는데, 합계로 따지면 2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기한 역시 정해져 있어서 다들 어디서 이 돈을 소진할지 행복한(?)고민을 하는 듯 하다.


가장 먼저 경기도와 성남시 지역화폐를 지급받고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 돈은 성남시에 소재한 연매출 10억 이하의 소상공업체에서만 쓸 수 있다고 하는 조건까지 붙어서 사용이 더욱 까다로웠다. 생각보다 많은 주위 가게들이 연매출 10억은 거뜬히 넘기는 견실한 규모라는 점도 놀라웠다. 맛있는 빵을 파는 작은 가게가 월 매출 1억이 넘는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알고보니 학교나 어린이집 공급으로도 꽤나 많은 매출이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사용처가 한정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돈을 쓰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녔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다보면 장을 보는 시간조차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장을 보는 행위는 즐겁지만 아이들을 동반하면 신경이 온통 분산되는데다, 차에 짐을 싣고 다시 무거운 짐을 내려 낑낑대고 올라오는 일이 버겁고 힘들다. 게다가 한번 마트라도 다녀오려면 집에서 나서서 최소 세시간은 후딱 지나가는데, 소중하디 소중한 주말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결국 늘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다. 인터넷으로 몇 가지 물건을 담아 장바구니를 집 앞에 내놓고 잠들면, 다음 날 눈뜨자마자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식자재를 냉장고에 넣기만 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었다. 누가 그 주문들을 보고 일일이 장바구니에 넣어주고 갖다주는지 얼굴 한 번 볼 일이 없어서 더 마음 쓸 것도 없는 그런 장보기였다.


그런 편리함을 무릅쓰고 오로지 돈을 쓰기 위해 집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알고보니 우리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30여년동안 신도시 상가 한 구석을 지켜온 가게들은 재난지원금을 환영한다는 종이를 써붙이고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신선한 고기와 함께 월계수잎도 챙겨넣어 주는 정육점,

집에 꽂을 예쁜 꽃을 함께 고민하며 골라주는 꽃집,

동네 상가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힙하고 멋진 (맛있음은 기본) 카페,

시식하다 배부를 정도로 온갖 과일을 권해주는 과일가게,

양파 하나, 감자 하나 담아도 흔쾌히 덤을 주는 채소가게,

단일 품종 특급 쌀만 직접 주문받아 도정까지 해 주는 쌀가게,

출출한 점심에 후딱 가서 한 끼를 해결할 김밥집,

아침마다 갓 구운 빵 냄새 풍기며 내 발길을 잡아끄는 빵집.....


3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가게들을 쓱 훑어가며 열심히 카드를 긁으니 장바구니는 가득찼고 재난지원금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보다는 약간 비싸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매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그렇게 장바구니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가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마트에서 정신없이 카트를 채우지 않아도 장바구니에는 가족들 먹거리가 가득 담겼고, 조금 손이 더 가도 무얼 만들까 고민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조금 더 편하게 이 돈을 쓰려면 피부과에 가서 미용 시술을 받아도 될 테고, 조금 가격이 나가는 물건을 살 수도 잇다. 하지만 기왕이면, 내가 굳이 돈을 안 써도 크게 어려움 없는 업종들 말고, 그동안 몰랐던 동네 가게들을 찾아가는 재미를 누려보라는 것이 이 정책의 취지가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모든  사고 온라인으로 모든 주문을 대신했는데, 이 '불편한 지원금' 덕분에 우리 동네의 매력을 하나 더 배웠다.



나같이 돈을 쓰는 재미를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아가서, 이런 사람도 있었다.

그냥 기부도 좋지만 같은 돈을 어떻게 더 좋은 쪽으로 쓸지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쓰는 법이라는데, 내 생각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는가에 머물렀는지 약간 반성도 되는 그런 글이었다. 

아무튼, 정말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단비같은 존재가 되고, 적당히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돈 쓰는 법' 그리고 '우리 동네의 매력'을 알아갈 수 있는 그런 소중한 돈이 되었으면 좋겠다.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잘 쓰기'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앞으로 재난지원금을 다 쓰더라도 오래오래 고민할 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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