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vet's Column
혐오의 시대다.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남을 혐오하는 시대이다.
다른 누군가를 끄집어 내리지 않으면, 마치 내가 내려 앉을까 두려움에 떠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에겐 모두 각자 처한 상황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모두 '나'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남의 사정보다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고, 타인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곳은 정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속의 야생 정글이 아닌 '인간의 정글'이라면, 최소한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인간이고, 인간에겐 '예의'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여 된다면, 열대의 잔인한 정글과 다를바 가 무엇인가. 어쩌면 사실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넘기며, 그저 지나가는 일로 묻기엔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당신과 말해도 느끼지 못할 리더이지만, 꼭 남아야 할 기록이기에 나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같은 상황에 구성원들의 반응이 상반되는 좋은 예시이다.
어느 숲속에 두개의 집단이 있었다. 한 곳은 비교적 젊은 층들로 구성된 모임 A, 또 한 곳은 그것보다는 10년정도씩 더 연장자들이 있는 모임 B 이다. 같은 상황, 다른 사람, 다른집단이다.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구성원 한 토끼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리더에게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함께 할 수 없어." 이에 대해 모임 B 의 장은 “각자의 상황을 존중하고 이해해,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아쉽게 되었네." 모임 A 의 장은 "너의 상황은 관심없어. 나는 이 모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어. 그러니 너는 비난받아 마땅해." 하며 자신이 얼마나 이 모임에 큰 기여를 했는지, 그래서 나는 너를 비난할 자격이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합당한지를 증명하려 들었다.
이는 왕관을 쓴자로서 욕먹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이자, 자신의 업적에만 관심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날 것으로의 말들이다. 열정과 패기는 있을지언정,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전무하다. 여기에서 리더쉽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 있을 뿐이다.
[그림 출처] @garden_sua
“ A leader is someone who brings out the potential of members.”
약간 다른 포인트 이지만, 진정한 리더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관을 쓴자에게는 토끼몰이 자격이 주어지는가? 왕관을 쓴 자는 그 자리에 앉은 이유가 추앙받고 싶어서인지, 일을 하기 위해서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몇해 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윤x열'이 '조x' 을 찍어내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떄, '윤'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던 걸까? 일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찬양받고 싶은 욕망이 더 앞섰던 리더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여론몰이를 받았던 '조x' 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이 숲속의 두 집단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보인다.
[그림 출처] @garden_sua
진정한 리더는 군림하지 않으면서도 재능적으로는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일이나 프로젝트의 발전을 꾀해야 하고, 리스크를 대함에 있어서는 개인의 감정이 섞이지 않은 조절력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인간적인 포용력까지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리더일 것이다. 제 살 깎아먹지 않고, 진정한 존경과 감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탄탄한 지지층이 된다.
다시 숲속으로 돌아와서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모든 토끼가 한 토끼를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이해도 각자의 역량만큼만 가능한 일이며. 비즈니스가 아닌 이상, 굳이 서로 이해를 구하려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는 같이 사는 사회에 있으므로, 만일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토끼였다면, 우매한 무리속에서라도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토끼로 부터 시작되는 연대가 우리 단체를, 사회를 더 발전되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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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garden_s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