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의 생일은 아주 특별했다. 여느 때처럼 똑같은 생일을 보내겠구나 상심하고 있던 중, 구순 친정아버지께서 아침부터 수차례 커피색의 구토를 하셨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전날부터 속이 좋지 않아 금식하였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나의 지피티에스에게 물어보니 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대원분들이 응급실로 이송해 주셨다. 혈색소 수치가 7로 빈혈이 심각하여 수혈을 하고 입원수속을 하고 위장내시경과 CT, 초음파 등 여러 검사에 들어갔다. 몇 년 전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트라우마에 주일임에도 자매들을 호출하였다. 언니가 작년 초기에 암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고 있던 터라 송구스러웠지만 나는 의학적 지식이 없어 감당할 수 없었기에 전공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PET 검사 결과는 위암 4기로 복막에 퍼졌다고 했다. 90세로 연세가 있어 수술이나 항암은 어려우니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교수님들 및 부원장님과 의견을 주셨다. 아버지는 극내향인이라 굳이 사실을 전하지는 않았다. 다만 위장에 천공으로 출혈이 있어 수혈과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만 말씀드렸다. 기대 수명이 빠르면 수개월에서 길어야 몇 년이라 했지만, 이과출신의 사람들은 애초에 통계라는 것은 절대로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거동이나 의식도 정상이고 간호간병병동이라 보호자가 상주할 필요는 없었다. 불안한 마음인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들렀다. 그리고 유튜브를 하는 재능을 살려 영상편지를 찍어서 당장 병원에 올 수 없는 군대에 간 손자와 아버지의 지인분들께 안부인사를 전했다.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던 아버지는 대본 하나 없는데도 말씀을 잘하셨다.
두 차례 입원과 대형 수술로 장기 입원생활을 한 적이 있는지라 보호자로서 병원에 가는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또래 담당교수들의 전공 분야와 논문과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명의라도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그 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이 너무나도 다정하셨고 의사를 믿고 따르는 것이 질병의 예후에도 좋기 때문이다. 다만 삶의 시간이 한정적이고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담당 수사관과 판사에게 의사의 진단서와 법률 의견서를 전달하자 진행 중인 소송을 취하하고 내년으로 출석을 미룰 수 있었다. 위암 4기에서 아버지의 생사를 바꿀 수 있다면 그깟 인간사 법률다툼 따위는 사사롭고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판사의 주문 (主文) 말고 마법이 필요하기에 과감히 주문 (呪文)을 택하기로 했다.
2주간의 입원을 마치고 아버지는 건강하게 퇴원을 하셨다. 혈색소는 정상을 회복했고 변도 정상으로 돌아와 출혈은 멈추었다. 고령으로 전립선 비대증과 폐에 약간의 물이 보이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암환자로 산정특례 등록이 되어 2주마다 통원 치료와 검사를 하면서 식사도 예전대로 하시고 늘 나가시던 봉사활동도 계속하실 예정이다. 아울러 한 치의 후회가 없도록 나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아빠의 버킷리스트인 출판도 해드리고 아버지의 유튜브 채널도 시작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착하게 살며 헌신하셨는데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으셔도 충분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암이 완치되는 의학기술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상어처럼 본인 치아를 재생해서 의치를 대신하고, 안약 몇 방울로 노안을 치료하는 것도 상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