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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ul 01. 2022

어려운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여자들

영화 <어떤 여자들>

영화 <어떤 여자들>은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지를 홀로 가로지르는 열차의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경적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달려오는 기차, 구름이 꽉 끼어 해가 보이지 않는 몬태나주의 겨울 도시 풍경. 다소 고독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로라, 지나, 제이미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하는 듯 합니다.


남성 변호사를 찾아가 자문을 받고 있는 로라(오른쪽)와 그의 클라이언트(왼쪽). 출처: IMDb

로라(배우 로라 던)는 리빙스턴이라는 도시에 사는 변호사입니다. 그에게는 골칫거리인 클라이언트가 있습니다. 고용주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남자인데요. 그가 이미 고용주와 합의를 한 바람에 피해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8개월째 말하고 있지만, 도무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결국 다른 남성 변호사에 자문을 구한 다음에야 그 사실에 수긍합니다. 그날 밤, 남자는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찾아가 갑자기 인질극을 벌입니다. 로라는 얼떨결에 그 건물에 직접 들어가 그를 진정시키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알버트를 찾아가 사암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는 지나(왼쪽)와 그의 남편(오른쪽). 출처: IMDb

지나(배우 미셸 윌리엄스)는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짓는 중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딸은 이 아이디어에 그리 열성적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지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지만, 사춘기 딸은 소통조차 되지 않죠. 지나는 이 지역의 역사가 담긴 돌로 집을 짓고 싶어서 알버트라는 노인을 찾아가 서부개척시대에 잘린 사암(sandstone)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알버트는 치매에 걸려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한참 머뭇거립니다. 지나의 남편은 지나를 도와주기는 커녕 방해만 될 뿐입니다.


네 시간을 운전해 결국 베스(왼쪽)를 만나게 된 제이미(오른쪽). 출처: IMDb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톤)는 목장에서 일하는 청년입니다. 하루종일 말을 관리하다가 집에 돌아가서 혼자 생활하는 게 전부인 일상이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야간학교에서 수업이 열린 것을 보고 무작정 방문하고, 그곳에서 학교법을 가르치는 법대 졸업생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만납니다. 베스가 왕복 여덟 시간을 쓰며 매주 두 번이나 이 수업을 가르치러 오는 건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함입니다. 수업이 지속될수록 제이미는 베스에게 점점 빠져들지만, 베스는 피곤함에 지친 기색이죠. 베스가 말없이 수업을 그만둔 날 밤, 제이미는 곧장 베스가 사는 리빙스턴으로 향합니다.


세 개의 이야기 속 로라, 지나, 제이미는 각자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를 겪습니다. 수많은 관계가 그러하듯 소통은 일방향이고,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행을 달리던 선이 만날 듯하다가도 서로를 교차해 X자를 그리며 어긋난달까요. 그럼에도 세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황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마음먹고 행하는 주체적인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라는 인질극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고, 지나는 가족에게 의미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대하기 힘든 상대를 설득하고, 제이미는 베스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장장 네 시간을 달려가니까요. 영화는 황량한 서북부 어딘가에서도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을 외면하거나, 어려운 일을 포기하거나, 중요한 순간에 돌아서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요.


영화 <어떤 여자들> 왓챠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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