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Mar 21. 2021

사랑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해야겠다 생각했다.

너와 마주하고 헤어지는 무수한 밤들이.

각자의 눈동자 안에서 서로를 확인하던 그 애틋한 날들이.


모든 하루의 끝맺음이 너로 귀결되는 순간.


따뜻한 빛을 발하는 노을을 대신하는 우리의 가로등 빛이.

발그레 뿜어져 공중에 흩어지는 서로의 숨이.

이 마음 한껏 담아 서로에게  뻗는 손끝이.


그 모든 것들에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너라는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해.



10월의 선선한 어느 밤이었다.

우리는 강천 바로 옆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밝혀주는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자주 듣는 노래,  요즘 빠져 있는 책과 영화는 무엇인지 선호하는 색깔, 성향,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너와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공감하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눈동자 안에 서로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가쁜 숨을 내쉬며 솔직한 감정을 내비치는 우리가 좋았다.


그 밤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앞으로 있을 모든 밤들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아쉬운 만큼 좋았다. 그 모든 순간을 나는 사랑했다.

그날 밤 느끼던 감정들의 형용할 수 없는 우리의 색깔들을 따뜻한 주황 가로등 불빛이 대변해 주었다.


-

사랑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해야겠다 생각했다.

이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계속 실천 중이다.


사랑에는 많은 감정들이 존재한다. 미움, 아픔, 쓰라림, 행복, 설렘, 질투, 그리움, 오열... 등 매일 형용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도화지 위로 겹겹이 칠해진다.


이 감정들은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미 과거의 연인이 된 사람,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

한 평생 살면서 한 명 또는 한 명 이상의 사람과 무조건 사랑을 하게 되는 우리들은 ( 나 자신과의 사랑도 ) 사랑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된다. 이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시간을 내어 들어줘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궁극적인 이유로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건강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연애를 할 때 우리는 망각과 헌신이라는 강력한 마법에 주문이 걸린다.

이 주문은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를 조금도 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버리는 연애를 하게 된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작은 행동에도 의미 부여를 하게 되며, 힘들어도 힘들다는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즐겁고, 무조건 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 당연한 수순으로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맞추게 되는 연애를 하게 된다.

이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 또한 연애 초에 매번 겪는 현상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위와 같은 현상들은 연애 초에 국한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 초가 지나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오지를 못 한다.

그러다 보면 감정들이 힘들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와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와 현재의 연애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건강하지 않은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초조함, 질투를 동반한 허탈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이 감정들의 허전함을 메꾸려 상대방에게 더 집착하게 되고 맹신하게 된다. 이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앞서 말했듯 우리들은 내 감정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감정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할 수 있고 그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기록, 즉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을 할 때의 감정을 글로 기록하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니체가 남긴 유명한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렇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현재 건강하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어도 며칠이 지나면 지금 고통받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이다. 그렇게 우린 어쩌면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 인지조차 할 수 없게 된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대로도 괜찮을 거 같다-라고.


우리 뇌는 방어기제에 잘 발 달 되어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 생겼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뇌는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해결하려 하고 힘든 감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연애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어 기제 중 하나가 합리화를 동반한 과거 회상이다. 이 과거 회상은 우리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부터 아주 멀어지게 만든다.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과거의 행복했던 장면들과 설레었던 감정들을 떠올리며 그때를 그리워하고, 내가 노력하면 언제든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만약 상대방이 현재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하더라고 그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고 이런 일들은 나 말고도 누구나 겪는 상황일 거라고 합리화한다. 안 좋은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 한다. 두려운 감정들을 그대로 묻어놓는다. 그렇게 나 자신을 잃어간다.


-

내 감정들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시간순으로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합리화란 방어기제를 무너뜨리고 동시에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데 큰 도움을 준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 응어리져있는 감정인지 알 수 있고,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감정들을 반복적으로 느끼는지 또한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내 감정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스쳐 지나가듯 느껴지는 우리들의 많은 감정들은 일상생활에서 잊히기 십상이다.

그렇게 우린 하루 동안 우리들의 감정들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그냥 흘려보낸다.


감정 기록을 하게 되면 이런 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솔직한 나만에 감정을 글로 구체화시켜 표현하면 그 시간만큼은 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내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슬픔과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도 원인을 생각하게 됨으로써 보다 빠르게 그 감정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아픈 감정은 끝이 있다. 물론 행복한 감정에도 끝이 있다. 그러기에 우린 모든 감정들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크고 작은 사랑에 감정들을 위로해 주고 축하해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감정 기록은 사랑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삶 전반적인 곳에서도 도움을 준다.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면 누구나 예민한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때는 뜻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하게 된다.

특히 가족, 그리고 나와 가까이 지내는 소중한 지인들에게 말이다.

원치 않는 가시 돋는 말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감정들을 글로 적으면 왠지 모를 무서운 중압감이 느껴지고, 겪었던 감정들을 되새길 때마다 괴로울 수 있다.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기에.


하지만 이 감정 기록은 분명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앞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을 정도로 이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만날 때의 내 감정 기록을 살펴보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 기록의 페이지에는 주로 자책과 슬픔으로 도배되어 있는 내가 보였다. 상대방에게 맞추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는 감정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나를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힘들고 지친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녹아버리기 마련이고, 평생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행복한 마음들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영원한 감정은 없다.  고로 이제까지 타인의 감정에 연연해하며 습관적으로 연애를 해오던 우리들은 이제는, 정말 이제부터라도 내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봐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을 일부로라도 갖게 되게 만드는 것이 감정 기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감정 기록은 단순하게 슬프다. 힘들다. 가슴이 먹먹하다. 설레었다. 기분이 좋았다 등등 간단한 단어들로 나열하며 기록해도 되고

시처럼 그때의 상황과 함께 은유적으로 풀어서 기록할 수도 있다. 또, 날짜 별로 상대의 행동에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보는  일기 형식의 기록도 좋다.


뭐든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화시켜 실체로 마주해봐야 알 수 있다.  써보고 써보고 또 써봐야 비로소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내 감정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길 바란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때의 힘들었던 '나'를 바라보는 것을 피하지 말길 바란다.

치유의 과정은 누구나 오래 걸린다. 그 치유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나를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당신은 어떤 감정이 지배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널 찾기 위해 종종 널 잃어버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